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로 평가되는 로마는 로마의 첫 번째 왕이 된 로물루스(Romulus)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제국 로마는 아름다운 테베르 강가에서 도시 국가로 시작되었다. 로마가 위치한 지역이 라티움(Latium)이였기에 로마의 문화, 언어, 인종을 라틴이라고 부르게 된다. 1세기 로마 역사가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우스’라는 대서사시에서 로마 마을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것은 장군 아이네우스가 라티움에서 로마라는 마을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를 왕국으로 바꾼 것이 아이네우스의 후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인데 이 때가 BC 753년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의 루퍼칼 동굴에서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 형제의 건국설화 때문에 로마의 상징동물은 늑대이다. 어릴 때 산속에 버려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한 양치기가 늑대에게서 데려다가 성장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장성한 로물루스가 그의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건국한 나라가 로마였다. 초창기 로마는 이태리 북부에서 이주해 온 에트루리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 로물루스 이후 BC 600년대까지 에트루리아인들이 왕위를 이어간다. 그 후 BC 509년부터는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원로원들이 이끈 정치였다. 당시 로마는 세 계층의 부류가 살고 있었다. 그것은 ‘파트리키안’이라는 귀족들과 ‘뚤레비안’이라는 평민과 노예들로 구성된 사회였다. 로마 최고의 조직체는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이었다. 저들은 종신직이었고 당시 통치자였던 두 명의 집정관들에게 정책안과 입법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집정관 제도는 BC 1세기 황제 통치 전까지 계속 되었고 저들의 임기는 1, 2년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집정관 두 명은 서로 견제할 권한이 있었는데 ‘비토’(Veto)라는 용어를 썼다. 비토는 “나는 거부한다”는 뜻의 정치 용어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로마시대의 언어이다. 이러한 가운데 로마는 평민과 귀족들이 심각한 대립을 벌인다. 이러한 대립을 중재시킨 사람이 카밀루스였다. 그 시절 로마는 자유인들만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인문학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 하여 자유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것이 문법과 수사와 논리 및 법학이었다. 이러한 로마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이 바로 카르타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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