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새해가 되려면
(딤후 3:1-5, 14-17)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신구약 성경은 지나간 역사의 기록물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미래에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책이기 때문에 모세 오경처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역사의 기록도 있고, 바울 서신처럼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도 있고, 요한 계시록처럼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에 일어나게 될 예언도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록 당대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과, 멀리 이방인들과 더 나아가서 아직 태어나지 아니한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예언의 말씀입니다.
1. 믿음의 아들 디모데
오늘 성경 디모데서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유럽 일부에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교회들을 세웠는데 에베소 교회는 그 중에 대표적인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중 있는 교회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서해안을 따라 강줄기가 흐르는 가운데 자연이 교통로를 이루고 그 주변에 크고 작은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에베소는 카이스테르 라는 강 하구에 자리 잡은 아시아지역의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1863년 대영 박물관이 지원하는 고고학 발굴 팀의 끈질 긴 탐사 결과로 6 년 만에 오래 동안 묻혀 있던 어마어마한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에베소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에베소 지역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서 말한다면
1) 가로가 50 미터 세로가 10 미터 되는 규모의 대리석으로 조각한 거대한 신전터입니다. 성경에도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데 바울 사도 일행의 전도로 아데미 신을 섬기며 돈벌이를 헤 오던 사람들이 밥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 2만 4천명이 동시에 앉아서 연극을 즐길 수 있는 야외극장은 대리석으로 22열 3단의 관람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야구장과 같이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무대에서 객석 끝이 까마득함에도 불구하고 음향시설없이 무대에서 하는 소리가 맨 뒤에까지 들릴 수 있도록 설계하였습니다.
3) 지성인들을 위해 돌로 만든 그럴듯한 도서관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 살던 사람 중에 두란노라는 사람은 철학과 수사학에 능통한 학자라고 보는데 바울이 그 두란노 서원에서 석 달 동안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기적으로 매일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지방 신학교가 우상의 도시 에베소에 최초로 세워진 것입니다.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그 결과 복음이 에베소만이 아니라 그곳에서부터 소아시아 여러 곳에 확산되어 여러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그와 같이 돈과 우상과 죄가 만연한 에베소에 교회가 세워졌다면 누군가가 거기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를 해야 하는데 물론 적임자는 노련하고 유능한 사람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같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핍박과 유혹과 생명의 위협도 각오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물론 바울 주변에는 유능한 제자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왜 젊은 사역자 디모데 목사를 그곳에 파송하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아끼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습을 시킨 것일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만일 아들을 사랑한다면 고생스러운 곳에 일부러 보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여러 제자들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비록 디모데가 젊지만 누구보다 신앙이 투철하고 강력한 영성으로 무장된 적임자라로 믿어졌기 때문에 파송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성경 말씀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딤후 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딤후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그렇습니다. 사역자든지 평신도든지 정말 중요한 것은 오랜 경험과 화려한 스펙이전에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과 눈물이 많은 영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 배우며 확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을 보면 에베소 지역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영적 최전선이었습니다. 에베소가 얼마나 타락된 도시이며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를 마치 그림으로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따라서 시냇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처럼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에베소의 문화가 얼마나 퇴폐적인지를 마치 영화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딤후 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에베소 사람들이 무식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들은 매일 책을 손에 놓치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지성인들이었지만 그들의 도덕성은 지극히 야만적이고 반 기독교적이었습니다.
(딤후 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그러므로 만일 디모데가 그러한 에베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홀로 경건의 외길을 가게 될 경우 얼마나 많은 위협과 핍박이 있을 것이 예상되었던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위로하기 위해 지난 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위로하고 있습니다.
(딤후 3: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와 같은 에베소 불신앙의 문화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양심까지 병들게 하였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더더욱 거짓말을 하기에 능숙해져가는 거짓말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딤후 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최전선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어떻게든지 돕고 싶었을 것이며 그를 위해 교회에서 사람을 어떻게 세우고 훈련시켜야 하는지를 비롯해서 목회지침서를 두 차례나 기록하여 보내는 가운데 가장 핵심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여기서 ‘배우고’라는 말(manqavnw, 만다노)은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것에 익숙해지다, 경험하다, 이해하다, 가르침 아래서 배우라’는 뜻입입니다.
또한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mevnw, 메노)은 그 지식이 단순히 머리로만 암기하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을 뜨겁게 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지식이 되도록 마음으로 확신하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에베소에서 신앙생활이 전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무신론과 불신앙과 음란의 문화로 썩어가고 있는 에베소에서 겨우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능히 이겨 그곳에 복음이 씨 뿌려, 싹이 나고, 자라, 풍성한 결실을 하게 하는 최선의 대안이요 무기라는 것입니다.
3. 말세에
오늘 성경 말씀이 기록 된지는 지금으로부터 어림잡아 이천 여년 전으로 시간적으로 너무나 오랜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한 에베소 문화를 가리켜 말세의 징조라고 했다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 보다 더 종말이 가까운 말세의 끝자락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흔히 성경에서 말세라고 하면 세상이 멸망을 당하는 종말을 가리키거나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의 기간을 뜻하는 말로 마치 아침 해가 떠서 저녁이 밤이 오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24 시간을 하루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천년 전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으며, 나쁜 말을 일삼으며, 절제하지도 못하고 잔인하며, 선한 것을 싫어하고, 가까운 친구를 배반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며, 교만하고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즐기며 살아가는 세상" 을 가리켜 말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이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학과 교육과 문화가 꾸준히 성장해 왔다면 사람들의 심성은 그 때보다 선해야 하고, 세상은 그 때보다 선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에베소 시대를 뺨칠 정도 타락한 시대라면 우리는 말세의 끝자락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한 2017년 이 시대상이 에베소와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더욱 악해지고 우상중에 가장 강력한 맘몬의 신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가 포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믿고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한 세상에서 타협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고 디모데처럼 청결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1) 주전 일천년 전 시편 기자는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2) 그 후로부터 천년이 지난 바울은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 시편 기자 이후 삼천년 바울 사도 이후 이천년의 세월이 지나 더욱 악해져만 가고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으며, 나쁜 말을 일삼으며, 절제하지도 못하고 잔인하며, 선한 것을 싫어힙니다. 가까운 친구를 배반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며, 교만하고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견디고 이기고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과 답과 무기는 역시 동일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배우고 확신하는 믿음 뿐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 새해가 어두움을 가르고 힘차고 솟구친 해 오름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나 새해를 맞게 되면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나누어 왔습니다.
물론 그 복이 나의 노력이나 수고의 결과라면 우리는 새해 인사를 ‘더 많이 수고 하세요’ ‘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나누는 새해의 복은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수고 한 것보다 더 풍성한 것이며 우리가 수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을 받는 거시 새해에 사람들이 복을 받으라”고 비는 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2017년 매일 매주 한 해가 복된 날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로부터 받아야 복은 어떤 것들인지를 알아야 우리가 그 복을 구하고 또한 그 복을 얻기를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문화는 변화나 인간의 타락한 성품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인간을 구원하고 변화시켜 새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의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복은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삶은 복인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인 것입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와 같은 복을 받게 하려고 내일부터 한 주간 신약성경 통독 특별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꼭 교회에 와서 읽어야만 하느냐?고 핑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것이 가능했다면 예수 믿은지 수십년 동안 최소한 몇차례라고 성경을 통독했을 것인데 평생 일독도 못했다면 어떻게 그 믿음으로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렇다면 읽고 듣고 실천하는 지키는 사람에게 어떤 복을 약속하셨습니까? 오늘 성경에 크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복입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둘째, 바른 사람이 되는 복입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셋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는 복입니다.
(딤후 3:17 상)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넷째, 한 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얻게 됩니다.
(딤후 3:17 하)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먼저 그와 같은 복을 받아야만 나보다 남을 사랑하고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쾌락보다 믿음의 길을 따라 살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변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침몰해 가는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낼 수 있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악취가 나는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설 교 > 이규왕목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에도 밤에도/(출 13:17-22) (0) | 2017.01.22 |
---|---|
오직 하나님께만/(계 19:9-10) (0) | 2017.01.15 |
새 부대를 온전히 준비하라/(마 9:14-17) (0) | 2017.01.08 |
오셨고 또 오실 왕 /(마 2 : 3- 11) (0) | 2017.01.08 |
평화를 누리고, 영광을 바라고/(눅 2:10-14, 롬 5:1-2) (0) | 2016.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