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령과 기도/(엡 6:10-20)

미션(cmc) 2017. 2. 5. 06:16

성령과 기도
(엡 6:10-20)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엡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아쉬워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배운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고, 경험한 것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 모르는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 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상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왜 이러지?’라는 회의나 갈등이나 고민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서 반복되는 예배와 말씀읽기와 기도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때로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가? 예배는 왜 드리는가? 기도는 왜 하는가? 오래 전에 기록된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인가? 라는 회의와 더불어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예배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점점 믿음이 자라고 척박한 삶을 살지라도 마르지 않는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래 교회를 다니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저절로 생기게 될까요?

오늘 성경 말씀은 어떻게 하면 그와 같 확신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더불어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는 가운데 확신에 찬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1. 예수님과 성령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시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시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아가셔서 사십일 주야로 금식하시며 기도하실 때 마귀가 예수에게 감히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하면서 세 번이나 거듭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였으니 삼진 아웃으로 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성령께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여기서 ‘이끌리어’라는 말(ajnavgw, 아나고)은 ‘데리고 올라가다, 이끌고 가다’라는 뜻의 확정된 상태로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시험에서 이길 수밖에 없었고 또한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후에 더욱 성령의 능력으로 강력해진 상태로 첫 사역지 갈릴로 돌아가셨고 그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각처에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여기서 성령의 능력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바리새인들이 시험을 이기게 하신 능력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함께하셨던 능력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하신 일이 첫째 전파하시고, 둘째 가르치시고, 셋째 치유하시는 일이셨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오래 전부터 시행해 오던 종교지도자들의 전통적인 가르침과의 확연히 차별화된 것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듣고 보던 사람들이 다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막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여기서 ‘놀라니’라는 말(ejkplhvssw, 에크플렛소)은  '놀라게 하다, 경악하게 하다, 놀라서 충격을 받다'라는 뜻으로 그로 말미암아 ‘두려움, 갈망, 사랑, 기쁨’이 유발되는미완료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까닭은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하는 악한 마귀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노리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거부, 비난, 모함, 미움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가운데서도 그와 같이 놀라운 역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고 그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기 때문에 바귀가 놀라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각색 병자들이 자리를 떨고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요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행 10:38, 개정)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의 공생애가 후반에 접어들고 십자가의 고난이 임박해 오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내주실 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 이유는 예수님이 생전에 가르치셨지만 미련한 제자들이 그것을 채 깨닫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마치 가정교사가 학교엣서 배운 것을 복습시키고 예습을 시켜 실력 향상을 도모하는 것처럼 보혜사가 영적인 가정교사가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첫 번째 하신 명령도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후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 당부하신 것도 역시 말세에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삼년 동안 제자들에게 본보이신 것을 대신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령은 제자들이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필수사항인 것입니다.

2. 사도들과 성령

구약 시대에 특정인에게만 임하셨던 성령이지만 때가 되면 마지막 날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만민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실 것이라는 요엘 선지의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도 승천하시지 않고 세상에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후에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하신 것도 역시 말세에 만민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삼년 동안 제자들에게 본보이신 것을 대신하여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령은 제자들이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필수사항인 것입니다.
마침내 그 약속의 때가 이르러 예수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영적 공백상태가 이르지 않도록 제자들에게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대로 제자들이 성령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에 힘썼을 때 마침내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이 각각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서 ‘각사람’이라는 말이 바로 어느 특정인에게만 한시적으로 임했던 성령의 임재와 차별화된 말세의 증거입니다.
이 때로 부터 지상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력한 교회 곧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차별화된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사도들은 복음을 전할 때 단순히 자기들이 알고 믿는 성경 말씀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복음을 듣고 믿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리한 눈으로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 관찰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행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는 우리의 신앙이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 다가 아니라 반드시 복음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받아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말세 이전에 구약적 믿음과 예수님이 오신 이후 말세의 신약적 믿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나 사도 시대에는 신약성경이 없고 구약 성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나 제자들이나 동일하게 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이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성령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사고 안하시고의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똑같은 성경을 읽고 듣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지라도 말씀과 더불어 성령이 얼마나 역사하신가의 여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믿지 않고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영적인 원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지는 것으로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않고는 보혜사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믿음 주시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를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와 같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예수를 주로 믿게 되었고 구원을 확신하게 된 것도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성령이 우리 안에서 보증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후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3. 그리스도인과 성령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신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을 때 일어나는 분명한 변화는 기도를 할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중에 누구도 우리를 믿음에서 넘어지게 하고 시험에 빠뜨리게 하는 악한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여러번 넘어지고 패배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 예수님과 제자들과 허다한 성도들에게 도전하였던 마귀가 오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어서 깨어 일어나 싸워 이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왜냐하면 첫 아담의 패배를 둘째 아담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과 히 11장에 구름같이 허다한 성도들이 이긴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상 교회 성도들인 언젠가는 다 입성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한 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사자에게 보낸 편지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기는 자입니다.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가장 불리하고 열악한 조건에서도 멋지게 승리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승리의 개선가를 부른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승리의 삶을 촉구하였습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뿐만 아니라 이미 승리를 경험한 역전 노장 사도 바울은 승리의 비책이 무엇인가를 소아시아에 어느 지역보다 우상 숭배와 무신론 철학과 이단과 음란과 물신 숭배가 가득한 곳에서 믿음의 생활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도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전신갑주’라는 말이 거듭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여기서 ‘전신갑주’는 당시 적과 싸우는 군인이 적의 화살과 칼과 창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완전무장을 뜻하며 쉬운 번역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흉패를 가슴에 붙이고, 빨리 달릴 수 있는 신을 신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에 접어들어 신약 통독과 모세 오경을 통독한 이유가 우리가 맞이한 2017년은 새해는 과거 어느 해보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악한 마귀의 도전이 극심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비하는 최상의 무기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인 말씀을 붙드는 것이요 또한 말씀에 붙들리는 삶으로 그와 같은 전신갑주를 좀 더 구체화 시키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인 말씀과 더불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슨 기도를 하든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어떻게 기도해야만 바른 기도인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렇게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요한의 제자들과 차별화된 기도가 무엇일까요?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와 동일한 내용이 산상보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성령’이라는 말을 마태 복음에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서 ‘좋은 것’이라는 말(ajgaqov", 아가도½)은 ‘탁월하다, 우수하다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더 좋은 것을 뜻하는 말로 누가복음에서는 그것을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2017년 새해에 주님이 내가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는지 한 가지만 구하라고 하면 제일 좋은 성령을 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도들이 나름대로 다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주의 종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성도들의 도움의 기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세계 각 곳에서 문화적인 충격과 영적인 핍박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게 이와 같은 기도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처음서부터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처럼 점진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1) 처음에는 내가 하는 기도로 나의 필요 중심으로 기도하지만 자꾸만 잡념이 들고 기도가 막히고 졸리고 실증이 나는 기도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세 번이나 깨우셨는데도 깊이 졸며 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2) 그 단계를 극복하면 하나님이 나를 기도하게 하시는 기도로 내가 기도해야 할 제목과 내용들을 깨우쳐 주시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시험하는 마귀를 성령께서 제압하여 주심으로 깊이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 더 나아가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성령 안에서 나 중심의 기도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복음 전도자가 보다 더 강력한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도록 전도자를 위해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복음 사역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기도 동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중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건강이나 좀더 빨리 출옥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대신에 언제 어디서는 담대히 복음 전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첫 번째 단계에 머물기 때문에 자기 필요 중심의 소극적인 기도에 머무는 신앙생활을 평생하기 쉽습니다.
모쪼록 2017년이 정치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 더욱 혼란스러워 진다고 예상될지라도 오늘 주신 말씀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되 특별히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와 선교사들에게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성령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