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 까는 사람! 당신의 이름은 바리새인입니까?
(사 3:8 새 번역) 드디어 예루살렘이 넘어지고 유다는 쓰러진다. 그들이 말과 행동으로 주님께 대항하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모독하였기 때문이다.
읽은 성경 구절을 메시지 성경 번역본으로 읽으니 조금 더 와닿습니다.
(사 3:8 메시지) “예루살렘이 다 쓰러져 가고 있다. 유다가 망하기 직전이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다 하나님과 어긋난다. 내 뺨을 후려치는 격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친절하게 친한 척하다가 둘만 남겨질 때 소위 말하는 ‘쌩 까는’ 사람을 접한 적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친한 척’하는 사람. 처음엔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니 요즘도 간혹 속상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기도 합니다. 말은 또 얼마나 거창하게 잘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싶으면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붓습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역겹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마 15 : 7 ~9 새 번역)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 없이는 안된다며 울고불고하며 살려달라고 떼쓰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먹고살 만하니 눈에 보이는 하나님보다는 이제 곁에 있는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는 역겨운 행동들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눈길은 무시한 채, 업신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이스라엘의 말과 행동들에 대해 하나님은 나를 모독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은혜를 뺨으로 갚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돌아보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모습이 하나님을 ‘쌩 까는’사람이고, 제 모습이 주변을 ‘쌩 까는’ 그 사람이었습니다. 글을 쓰며 저를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가져봅니다. 제가 바로 그 외식하는 사람, 바리새인이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세대에 어느 순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바리새인이 아닌, 하나님의 눈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오늘을 살아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 말씀드립니다. 이 묵상 나눔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이 시대 속에서 나눠지지만 중심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이 가장 소중합니다. 우리들의 눈높이가 아닌 하나님의 눈높이로 이 시대를 바라보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괜히 오해하셔서 ‘쌩 까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바리새인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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