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제자 셀/제자셀 교재(2007)

거룩한 노예

미션(cmc) 2008. 12. 10. 07:11

2007년 제9주 / 거룩한 노예

(3월 4일 주일설교 / 롬7:21-25)

 

▣ 인도자 : 환영인사

■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갈등문제 나누기

■ 우리가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얽매이지 않고 마음것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서로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과 같은 신앙의 경지에 있는 사람도 갈등을 격었다.

그런데도 거룩한 일을 해냈다. 1)쓸데없는 갈등과 2)도움이 되는 거룩한 갈등이 있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과 성품으로 살고 싶은데 안되는 갈등이 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믿을수록 갈등은 더 커진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위성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거룩한 갈등이다.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해설찬송가 등을 참조하여 곡의 배경을 이해하고 부릅니다(참고:450장, 338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롬7:21-25

 

1. 인간의 행복은 자유를 누릴 때입니다. 풍요롭지만 세상에서 모든 자유를 소유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질병과 돈과 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자유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이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진정으로 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돈 때문에 죄를 범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 돈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루에 한끼 식사를 하면서 모은 재산을 신학교육에 써 달라며 신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손길 바로 이러한 사람이 돈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이나 질병보다 더 자유로워야 할 것은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져야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인간에게 시대나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율법의 한계가 무엇입니까?(롬7:7,12,2).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먼저 양심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고, 죄를 범하였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주셨으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양심이 그와 같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죄를 범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죄를 즐기며 살아가는 타락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인간에게 시대나 주변 환경 여건의 차이와 무관하게 어떤 것이 죄이며, 어떤 사람이 죄인이며, 죄인에게는 어떤 심판과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지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율법인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것이 바로 구약의 율법서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인간을 선하게 만들지 못하며, 죄의식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며, 지은 죄를 속죄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하기만 하기만 하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의 한계입니다.

 

3. 사도 바울에게는 거룩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믿지 않았을 때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그리고 영적 거장이 된 후에 영적인 갈등과 번민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행24:16, 딤전1:19, 롬7:15,23,24).

행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롬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과거 철저하게 율법 중심의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율법의 노예가 되어 늘 죄에 대해 억눌림을 당하며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로는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율법으로 범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십자가에 못박고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로는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보다 양심적으로 거리낌이 없는 선한 삶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양심을 더럽히는 삶을 살지 말도록 권고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거룩한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타가 미워하는 죄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중성을 그의 탄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죄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 남편인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면 할수록 그 예수님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고 할 때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죄악성을 깨닫고 몸부림을 치는 거룩한 갈등인 것입니다.

 

4. 사도 바울은 거룩한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고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영성이 뛰어난 사도 바울이 크게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롬7:20,21,22,25, 롬14:8,9).

*롬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나 선행만으로 새 남편인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려는 죄악성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마음에 번민과 갈등과 회개를 반복하는 거룩한 갈등인 것입니다. 손이 깨끗한 사람이 손을 자주 씻는 사람일 것입니다. 회개는 바로 그와 같은 일이며 거룩한 갈등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잘 믿으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왜 자주자주 회개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손을 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를 가나 죄가 없는 곳이 없고, 어느 누구를 만나도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라는 관점에서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1) 누구보다 죄를 많이 범하며 살아가지만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2) 누구보다 죄를 멀리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지만 교만하지 않으며, 자신의 힘과 의지로 선한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부단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에 대한 책임이나 형벌에 대해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자의 사람은 방종한 삶을 통해서 형벌을 가중시키며 사는 죄악에 노예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사람은 죄의 심판에서 자유로운 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위해서 세상 것을 멀리해야하는 수고로움 때문에 부자유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자유와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오래 믿으면 믿을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더 크게 깨닫게 되고, 신앙 양심을 지키며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할수록 그것이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깨달음인 것입니다. 자기 내면에 옛사람이 죄악이 함께 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선을 행치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다른 한 편으로 내 안에 내가 선하게 살기를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기 위해 주님이 내 안에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힘으로 내가 예수 믿고 그 힘으로 내가 말씀을 깨닫고 그 힘으로 내가 선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겻입니다. 이제 정말 내가 죄에서 벗어나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 힘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것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우리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영성이 뛰어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해서 곤고한 사람이라고 부르짖었다면 오늘 우리는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5. 변화를 경험한 어거스틴은 저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번 주 말씀을 묵상하며 결심한 바를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고후2:14).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어거스틴이 어느 날 그이 영혼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눈앞에 스크린처럼 드러나고, 폭우 같은 눈물이 쏟으며 통곡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한없이 통곡하고 싶어 정원의 호젓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라고 더욱 애통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소년인지 소녀이 구분이 되지 않는 노래 소리로 가사의 내용이 "책을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라고 들렸습니다. 그는 즉시 성경을 펴들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곳이 로마서 13:13-14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는 "나는 갈등함으로 존재한다“ 라는 말과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노예가 되라는 것입니다.

1)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영적인 참 자유와 평안을 얻는 비결은 내 힘으로 죄를 이기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미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시고 사망의 이기신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 섬기는 ‘거룩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과거 우리가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며 살아왔던 것처럼, 이제 부터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거룩한 노예가 되며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살아 갈 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어거스틴처럼 거룩한 갈등과 거룩한 깨달음을 통해 거룩한 노예가 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지킴이 : 합심기도

■ 이미 내 죄를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거룩한 노예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 2007년도 교회 표어인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 전교인 특별기도회와 심령부흥회, 강사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 제자훈련, 장년 성경공부반, 춘계대심방, 러시아 국립교향악단 초청을 위해, 올 해는 많은 전도의 열매를 위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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