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13주 / 기도의 승자와 패자
(4월 1일 주일설교 / 눅22:39-46)
▣ 인도자 : 환영인사
■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 나에게 건강의 위기와 직장의 위기(구조조정)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서로 나누기 바랍니다.
▣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해설찬송가 등을 참조하여 곡의 배경을 이해하고 부릅니다(참고:396장, 135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눅22:39-46
1.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같은 민족에게 어떤 대우를 받으셨습니까?(마13:54).
2.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사단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어떻게 훼방했습니까?(마2:16, 4:10, 16:23, 요13:27, 고후10:4, 엡6:12, 계3:9).
3. 우리에게는 영적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찾아올 영적 위기를 예수님은 어떻게 대비하셨습니까? 그리고 삼무지(三無知)가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마20:19,눅22:31~34).
4. 예수님은 큰 시험을 앞두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영적 전투에서 부끄러운 과거가 있지만 집중으로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눅22:40,41,43,44,45, 행1:13,14, 2:38,41, 행3:1).
5. 패배자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 승리자로 변신해야 됩니다. 은혜의 말씀속에 결심한 바를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벧전5:8,9, 막9:28,29, 롬12:2).
▣ 지킴이 : 합심기도
■ 우리 모두 깨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써 기도의 승리자, 영적 전투의 승리자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 성찬식을 위해서, 부활절 연합새벽예배를 위해서, 부활주일에 태신자 및 불신 이웃들의 전도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 2007년도 교회 표어인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기도의 승자와 패자
(눅 22:39-46)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눅 22:40)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눅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 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 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너 나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간절한 염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북 간의 대립이 종식되고 통일이 되는 것을 아이나 어른이나,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 다 같이 바라는 간절한 소원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기만 하면 막대한 금액의 군사비용을 국민복지와 개발에 전용을 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활성화되고 평화롭게 잘 살수 있다는 사실을 남북 당국자들 이 다 잘 알면서 왜 그것이 분단 반세기가 넘도록 왜 이루어지 않는 것일까요?
그토록 바라는 남북통일은 남북의 영수회담이 성사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남북한 중에 어느 한쪽이 이념과 사상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이 무력으로 상대방을 정복하지 않으면 가시적인 통일이 불가능한 것이 서글픈 우리 민족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남북한이 적이 되어 많은 시간과 엄청난 군비를 낭비하면서 남북이 서로 고통을 감수하는 까닭은 남북한이 일본이나 중국처럼 남남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동족이요 친척이 됨에도 불구하고 적이 된 것은 서로가 추구하는 사상과 이념의 대립 때문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도 그와 같은 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난 유다 지파의 후손인 목수 요셉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마디도 이치에 어긋난 말씀을 한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도덕이나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진리만을 말씀하셨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선한 일만 하셨음을 당시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아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었습니다.
(마 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또한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며 열심히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서기관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를 힘쓰던 바리새인들이 누구보다 예수님을 대환영하고 사역에 적극 협력했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가장 악하게 반대하고 훼방하고 욕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하셨기에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적대적이었을까요? 무슨 사적인 감정이 있었을까요?
만일 그도 저도 아니라면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슨 손해를 입히기라도 하였나요?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혈안이 되어 예수님을 적대적으로 대한 것일까요? 무엇에 사로잡혀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처럼 혈안이 되어 예수님을 괴롭힌 원인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와 같은 사람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오늘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될 때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영적 전투의 개시
영원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태여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물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구원’이란 말의 의미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고난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외부의 도움으로 건짐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구원이 왜 필요할까요? 그것은 인간이 가난은 돈으로, 질병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죄로 말미암은 죽음은 인간이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돈과 권력과 지식과 명예가 있는 사람도 결국은 다 죽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이 인간에게 왜 그렇게 무법자가 되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러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밖에서 유입된 것입니다.
예화
외국 여행객들이 때로 동식물을 반입을 하게 될 때 공항에서 그것을 철저하게 단속을 하는 이유는 거기에 토종 동식물들이 이겨낼 수 없는 치명적인 병균이 묻어 들어오게 되면 토종 동식물들이 감염되었을 때 치명타를 입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 중에 하나가 소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소나무에 치명타를 주는 것이 소나무 재선충이라는 해충으로 그 크기가 1mm 내외의 실 같은 선충으로서 나무 조직 내에 수분, 양분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를 죽게 하는 해충으로 치료약이 없고 매개 충에 대한 천적도 없어 한번 감염되면 6일째부터 잎이 처지고 20일째에 잎이 시들기 시작하여 30일 후 잎이 급속하게 붉은 색으로 변색하며 100% 고사하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라고 까지 말합니다. 그와 같은 재선충이 1905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 이제는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서 백두대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죄가 바로 영적인 재선충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에 없었으나 사단이 몰래 가지고 들어와 유포시킨 것이 이제는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방법으로 무죄하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사단의 손아귀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일전을 벌리신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단은 자기가 지배하는 죄악된 세상에서 종노릇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훼방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1) 사단이 헤롯왕의 마음속에 시기심을 불어 넣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무죄한 어린아이들을 무참히 죽임으로 그 부모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2) 아기 예수를 죽이는 일에 실패한 사단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태클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다 걸려 넘어지는 유혹을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3)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를 통해 예수님을 위하는 척 하면서 인간을 구원하시지 못하도록 시험하였으나 역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사단이 이처럼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죄와 사망에 노예가 된 인간을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을 알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하였습니다.
그 사단이 지금은 폐업을 한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세상에다가 견고한 진을 채려 놓고 동일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계속해서 시험하고 유혹하고 압박하고 위협하는 방법을 동원하여 인간들을 넘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나 지금이나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그럴듯한 이론과 방법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하는 반면에 비 복음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소진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하거나 중단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물욕에 노예가 되어 원수들에게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치우는 배은망덕한 일을 하였습니다.
(요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제 예수님은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단이 거느린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헤롯왕과 로마 총독과 그들의 부하들입니다.
이는 사단의 권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 성경은 그러한 집단을 가리켜 사단의 회, 또는 정세와 권세, 강력한 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계 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예수님은 홀로 그 같이 막강한 사단의 권세와 맞서 싸우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바로 그들 배후의 조종자인 사단과의 영적 전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홀로 그와 같은 영적 전투에서 어떻게 사단과 싸워 승리하셨는지 우리도 배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단은 오늘 우리들도 넘어뜨리려는 영적인 대적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법을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2. 영적 위기를 만난 사람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행하신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도 예외가 없이 모두가 다 선한 일이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칭찬과 상급을 받으셔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일은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여러 번 예고하실 정도로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마 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제자는 스승과 운명을 같이하는 법인 것처럼 예수님이 당시 가장 끔찍한 사형틀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된다면 그것은 제자들과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만 하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만 공격하면 제자들은 덩달아 넘어지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공격 목표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까지 포함되어있었으며 그 첫 번째 표적으로 시몬 베드로를 지목하고 있음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이는 예수님을 공격하고 수제자 베드로를 공격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사단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단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중을 기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큰 공격을 받으실 장본인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보다 먼저 제자 베드로가 다칠까봐 더 걱정하시면서 먼저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서 믿음이 떨어진다는 말은 베드로가 한번 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게 될 것을 주님이 미리 내어다 보시고 기도 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에게 영적으로 최대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은 물론 가족까지 버렸으나 이제 한방에 그 모든 것들이 다 날라 가버리고 말게 되는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그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좀 더 신중히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위해 겸손히 기도하는 일만이 최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큰 소리부터 쳤습니다.
(눅 22: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물론 그와 같은 베드로의 고백은 입술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의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으나 베드로가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은 자신의 육체가 고난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베드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큰 소리를 치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을 하고 나중에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까지 다 아시고 베드로의 미래를 위해 예수님은 중보기도까지 하신 것입니다.
(눅 22: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무엇을 해야 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시고 항상 그것을 대비하셨습니다. 그 최선의 대비가 바로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최대의 영적 위기를 앞에 두고 큰 소리 치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대동하시고 평소 습관처럼 기도하시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물론 누구보다 기도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다고 예고 받은 베드로였습니다.
그와 같은 베드로의 모습은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착각하지만 자신에 대한 삼무지(三無知)가 있습니다.
1) 과거에 대한 무지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얼마나 못되게 살아왔는지를 모르고 오히려 자기만큼 세상을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2) 현재에 대한 무지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잘 살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불순종내지 게으른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름으로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미래에 대한 무지입니다.
자신에게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죽음이며 사후에 천국과 지옥과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것에 대해 모르거나,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과 다름없이 무관심한 삶을 살며 전혀 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은 삼불무지가 바로 영적위기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위기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그것을 깨우쳐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며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의 동산 겟세마네로 올라가야 합니다.
3.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예수님은 예고된 위기를 앞두고 제자들과 더불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신 후 당신이 먼저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눅 22:40)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여기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이라는 말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처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시험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에게 더 강도 높은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있다고 해서 다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앞두고 기도하는가 안하는가에 따라 시험에 들기도 하고 이기기도 합니다.
만일 깨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마치 기름을 지고 불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처럼 시험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eijsevrcomai- 들어가다, 들어오다-부정과거 능동태).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큰 시험을 앞두고 어떤 자세로 그 시험을 대비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무릎을 꿇는 기도였습니다.
(눅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여기서 무릎을 꿇는 것은 마치 극한 패배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 앞에서 무릎을 꿇으신 것이 아니라 시험을 이기도록 힘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처럼 무릎 꿇는 기도를 하였을까요? 아닙니다. 중대한 영적 위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신 졸다가 두 다리를 피고 잠을 자버렸습니다.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여기서 잠들었다는 말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잠을 자는 상태(koimavw)를 뜻하는 말로 제자들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물론 그들의 심정은 큰 슬픔에 잠겨 있었으나 그 슬픔을 기도로 불사르지 못하고 잠에 묶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제자들의 나약한 마음을 안타까워하시면서 거듭해서 제자들을 깨우셨으나 결국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은 기도를 중단하지 않으시고 밤을 지새우며 땀이 핏방울처럼 흘러내리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십자가라는 동일한 영적 위기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올라왔으나 제자들은 기도를 시작도 못하고 잠이라는 시험에 빠져버렸으나 예수님은 시험의 잠을 이기시고 거듭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을 시험을 이기실 수 있도록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눅 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이는 예수님의 기도 현장이 단순히 기도를 하고 안하고의 종교적인 형식의 장이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을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게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팔고 버리고 떠나도록 시험하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터인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영은 영으로 이길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적 전쟁에서 이기시게 하려고 사단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천사를 보내어 돕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육신적인 유혹을 이기시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잠에 빠져 사단의 시험을 이기지 못한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고하신 말씀대로 고난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리고 도망치고 옛 생활도 되돌아감으로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수고를 헛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우리들과 같았다면 그 같은 베드로에게 실망한 나머지 다시는 만나지 않고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만 치다가 결국 당신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하는 버리고 떠나간 베드로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그를 부르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자신과 같은 영적 실패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믿음을 굳게 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혀 기도에 힘써서 천사보다 더 좋으신 삼위일체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행 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다 거기 있어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여기서 ‘마음을 같이 하여’ 라는 말은 만장일치가 되었다는 뜻이고, ‘전혀 힘쓰니라’는 말은 현재 진행형으로 끈질기고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기도에 집중한 것을 뜻합니다.
비록 그들이 일차 영적 전투에서 패배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회개하고 기도에 집중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천사가 아니라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변하여 새사람들이 된 것을 베드로의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와 같은 베드로의 설교 입에 발린 학설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의 영적 체험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아우성치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잡아 죽이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회개하고 주께 돌아온 사람들이 무려 삼천 명이나 될 정도로 베드로는 능력의 사도로 거듭난 것입니다.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자만하지 않고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계속함으로 영성은 배가되어 더욱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미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거지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게 만든 기적입니다.
(행 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제자들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물질 이성 명예 인간관계 기타 등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노리는 사단의 도전은 오늘 우리도 피할 길이 없고 오직 대적하여 승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그렇다면 그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것을 아시고 오늘 우리에게 미리 준비해 주신 것이 바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에 베드로 사도입니다. 과거 기도를 포기하고 영적 패배자가 되었던 베드로의 모습이 오늘의 나의 모습이라면 내일도 패배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과거 주님을 부인하고 버리고 떠났던 영적 패배자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현재 주님을 자랑하고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고 앉은뱅이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영적 승리자로 변신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할지라도 오직 하나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 외에 내가 변화되고 능력 받아 새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제 나이가 이 정도가 되고, 신앙 연조가 이 만큼 되었다면 베드로와 같은 변화가 절실하게 요청될 것입니다. 다만 이대로 계속 영적 패배자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베드로처럼 변화되어야 할 것이냐? 가 문제입니다.
물론 나에 대한 주님의 뜻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의 선택과 결단만 남은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계속적으로 변화되라는 명령으로 지난번의 부흥회나 특새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기도만큼 더 깊이 더 순수하고 더 온전히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을 믿고 우리 모두 깨어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에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시다가 부활절을 맞이하는 기도의 승자, 영적 전투의 승자들이 다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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