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놓아버린 권력, 그 ‘막장’의 눈물
[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 때-사울왕]
하지만 어떡하는가? 하나님은 급할수록 하나님의 임재 가까이 다가오는 영적 예배의 시간을 더 고대하시는 것을…. 바로 그 시간에 비로소 인간의 급한 일들은 사라지고 모든 심각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정돈되는 것을….
사울은 어릴 때부터 성장 발육이 남달랐다(삼상 9:1, 2).
베냐민 지파에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도 그보다 더 준수하고 키 큰 자가 없었다.
용력도 대단하여 용장이 될 자질을 타고났다.
베냐민 지파가 어떤 지파인가? 사사시대 때는 11지파의 40만 대군과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을 치를 만큼 용감무쌍하였다(삿 20:17, 35).
하지만 그 대가는 처절하여 베냐민 지파의 용사 2만 5000명을 비롯하여 온 족속이 몰살당하는 비극도 겪었다.
그때 겨우 살아남은 600명의 남자들이(삿 20:46-48) 이스라엘의 처녀가 아닌 므낫세 땅에 거하는 야베스 길르앗(삿 21:12-14)의 처녀와 실로의 여자들과(삿 21:21-23) 혼인하였으므로, 사사시대 말기 사무엘 선지자 시대의 베냐민 족속은 우생학적으로 우수하였다.
남자들은 가장 용감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베냐민 지파 600명이 조상이고, 여자들은 고향인 라마(창 35:16-20)의 여자들이 아니라 먼 곳 세겜과 길르앗 출신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자손은 건강한 용사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에서 가장 잘 생기고 거구인 사울이 40세에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던 것이, 당장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는 암몬 족속(삼상 11:1), 블레셋 족속(삼상 13:5), 아말렉 족속(삼상 15:1-3) 등과 전쟁에 임해야 했으므로 용력이 출중한 자가 리더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달라야 했다.
허다한 세상 왕국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왕이라면 그 자질부터가 달라야 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하고, 하나님과의 대화할 수 있어야 했는데 사울왕은 바로 이 점에서 불합격이었다.
평상시에는 절차에 따라 선지자의 말을 경청하고 사사 및 족장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함께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의식을 마치고 출정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열두 지파가 집결하여 급히 전장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그런 정식절차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선지자는 자신이 직접 집례하고자 하였다(삼상 13:8-14). 사울 왕이 보기에는 현실에 맞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의 편이었다. 사울 왕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였다.
급한 일을 급하게 처리하자는 게 왜 문제일까? 이 비상시국에 규정대로 제사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일이란 게 완급에 따라 약식으로도 치를 수 있고, 제사장 직무를 왕이 대신한다고 문제 될 게 뭐야? 같이 기름부음 받은 처지에 전문 직종을 따질 게 뭐 있어? 사울왕은 수많은 항변이 속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떡하는가? 하나님은 급할수록 당신을 먼저 찾는지에 관심이 많으신 것을…. 때와 기한을 정하여 둔 창조주의 편에서 보면(행 1:7), 세상 시간의 흐름보다 인간이 마음 깊은 호흡으로 하나님의 임재 가까이 다가오는 영적 예배의 시간을 더 고대하시는 것을…(요 4:23, 24).
그리고 바로 그 시간에 비로소 인간의 급한 일들은 사라지고 모든 심각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군대에 의해 정돈되는 것을…(창 32:1-2).
혹 하나님의 의중을 가벼이 여겨 인간적인 판단으로 힘에만 의지한다면 당장 효과가 나올지는 몰라도 결국 더 힘겨운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사울왕은 이 함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삼상 15:22-26).
|
사울왕은 예의 세상 지존들처럼 행동하였으므로 거기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로 말미암아 밀려오는 신령한 이익이 없었다.
오히려 그 자리엔 악령이 자리 잡았고(삼상 16:14).
그러자 다윗을 살해하려는 폭군으로 전락하였다(삼상 16:13, 18:10-16). 13년에 걸친 그 음모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앞에서 무참히 실패하였다.
어리석게도 사울왕은 자신의 잔꾀와 힘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맞서고자 한 셈이었다.
그 실패한 인생의 연장선상에서, 이제 여든의 노인이 된 사울왕은 장자 요나단을 대동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길보아 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삼상 31:1-6).
죽어 가면서 그는 혹 하나님과 함께 전쟁을 치르던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때란 사실을 깨달았을까?
하나님을 떠나 추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살았던 13년의 집권기간을 할 수만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차라리 지금 전장에서 적군과 맞서 싸우다가 맞게 된 이 죽음의 시간이 제사장의 나라인 조국을 위해 자신이 마지막으로 기여할 수 있는 봉사로 여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하나의 위로로 말미암아 감사의 죽음을 맞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헌신을 귀하게 생각하여 다윗에게 명하셨다.
깊은 애도와 애가로 사울왕을 기리도록(삼하 1:11-27). 그의 인생은 쉽지 않은 선택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진정한 권력의 길이 있음을….
'묵 상 > 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받은 만큼 드리지 못한 임금의 노래 -솔로몬 왕 (0) | 2009.01.18 |
---|---|
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 왕 (0) | 2009.01.18 |
하나님 나라의 정치체제는 '공존'과 '합력' -사무엘 (0) | 2009.01.18 |
조상의 과오를 거울삼아 새 날을 열다 -고라 자손 (0) | 2009.01.18 |
믿음으로 전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갈렙 (0) | 2009.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