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날 동안에만 태평성세라면…
[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 때_히스기야 왕]
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의 왕이 되자마자(왕하 18:1, 2) 정치 개혁에 나섰다.
나라 정치의 근본을 오직 하나님 경외에 두었음은 물론 자주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그는 옛날 다윗 대왕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자 노력하였고(왕하 18:3-6), 대외적으로 자주 외교 노선을 선포하고서 앗수르의 간섭을 배척했다(왕하 18:7).
또한 블레셋 족속을 서남 바닷가로 밀어붙이고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했다(왕하 18:8).
# 히스기야 왕의 부국강병책
이와 같이 다윗 시대처럼 제사장 나라의 모습을 일신하고 있는데, 앗수르와 유다 왕국 사이에 그동안 완충지대 역할을 해오던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패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리고 산헤립이 앗수르의 새 왕이 되자마자 자신도 선왕처럼 정복 왕이 되겠다고 대군을 동원하여 남침해 왔다(왕하 18:9-13).
왕국의 존망이 위태해진 이 국면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나라를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는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히스기야는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산헤립 왕에게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전쟁 배상금으로 지급하고,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치장하던 금박을 모두 벗겨 앗수르 제국에 보내줌으로써 왕국의 멸망을 막았다(왕하 18:14-16).
그런데 히스기야 왕의 부국강병책을 눈치 채기라도 했는지 앗수르 군대가 또 쳐들어왔다(왕하 18:17, 사 36:2).
이제는 앗수르 군대를 달래어 철군시킬 금과 은도 없는데 어찌할 것인가?
재물이 바닥나자 인간적인 방법이 모두 소진된 히스기야 왕은 드디어 선지자 이사야를 찾아 하나님께 매달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온 부자 청년처럼(막 10:17-27) 그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물이 많았을 때는 율법 국가의 재건에 박차를 가하면서도 하나님을 직접 찾지 않았다.
그러나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예루살렘 성의 최후가 목전에 다다르자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도에도 응답해 주셨다(사 37:21-35).
하룻밤에 18만 5천 명의 앗수르 대군이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몰살당하고, 산헤립 왕은 니느웨로 도망쳤으나 자식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사 37:36-38).
하나님께 예루살렘 성의 구원을 호소하던 히스기야 왕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 소원 성취 후 하나님 은혜 잊어…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리자 향년을 앞두고서 감히 하나님께 기도로써 요청하였다.
다윗처럼 선정을 베푼 자신을 살려 달라는 내용이다(왕하 20:1-3).
다윗의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고, 예루살렘 성도 앗수르의 손에서 확실하게 구원해 주셨다(왕하 20:5, 6).
그런데 수명 연장도 받고 앗수르의 대군도 물리치게 되자 히스기야 왕은 마치 자신이 다윗 왕처럼 패업을 달성한 줄 착각하고 실수를 했다.
멀리 바벨론에서 온 친선 사절에게 그만 국고와 병기고 등 국가의 기밀사항을 자랑삼아 공개해 버린 것이다(왕하 20:12-18).
이 때문에 110년 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망하고 만다.
그렇지만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단지 그의 사는 날 동안에는 태평성세가 계속될 것임을 알고서 그만 만족해 버린다(왕하 20:19).
두 번째 실수는 자식 교육의 실패였다.
수명을 연장받은 지 3년 만에(왕하 21:1) 왕자를 얻었는데 늘그막에 얻은 독자라고 너무 귀하게 키운 것이 실수였다.
므낫세 왕자는 12살에 즉위하여 히스기야 왕의 모든 정치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악정이 역사상 가장 포학했기에 아모리 족속의 행위보다(창 15:16) 더 심하다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았다.
그의 손자인 요시아 왕의 선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사장 왕국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데 일조하였다(왕하 21:11-16).
결론적으로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처럼 성군이 되고 싶었지만 나라가 망하기 직전 또는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 순간에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므로 소원을 성취한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제사장 나라의 미래까지 등한시했다.
이 점이 다윗 왕과 구별되는 히스기야 왕의 한계였다.
따라서 시편 제110편에 나타난 다윗 왕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과 신앙고백 같은 것이 히스기야 왕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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