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에서가 오고 있다

미션(cmc) 2009. 1. 26. 15:08

'지상설교'에서가 오고 있다(창 32:1-12)

길자연 목사[총회장, 왕성교회]

 

이발사가 무서워 일생동안 머리를 깍지 못하고 장발로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식에 독약을 탔을까봐 일생동안 쥬스밖에 먹지 않고 살다가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워드 휴즈가 바로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옥죄었던 불안과 공포는 비단 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날 우리 모든 인간들의 공통적 심리현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확실히 현대인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W.U.오우든은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를 일컬어 「불안의 시대」, 「염려의 시대」라고 진단했습니다. 핵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오늘날 10대 미국 청소년들의 가장 큰 문제라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발달된 문명시대에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문화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질병에 대하여, 전쟁에 대하여, 지구의 온난화에 대하여, 불의의 사고에 대하여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불안과 공포가 야기하는 엄청난 폐해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문제보다도 우리의 정서를 억누르고 있는 불안과 공포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우리의 정서적 문제에 대해서 근원적인 분석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7절을 봅시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이는 야곱이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엉뚱한 데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그리고 마음을 옥죄어오는 긴장감과 중압감에 사로잡혀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마음이 매우 답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에서가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에서에게 보내었던 사자들로부터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6절). 그리하여 에서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견디다 못한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11절) 과연 에서가 자신과 가정에 엄청난 불이익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야곱은 크게 두려웠고 불안했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동시에 들사람이었습니다.(창25:27) 그는 야곱처럼 집안에 머물러서 종용히 하나님과 교통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눈만 뜨면 어깨에 활을 메고 이것 저곳 들판을 쏘다니면서 사냥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던 물질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쾌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한 여자의 품에 만족치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에게 복수의 칼을 갈던 폭력주의자였습니다(창27:41). 에서는 야곱처럼 종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즉흥적이면서도 다혈질적인 사람 이었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대로 순간적으로 느끼는 대로 행동하던 행동파였습니다.

야곱은 바로 이런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의 칼을 품고 오고 있다는 소리에 크게 무섭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말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을 사자로 보내어 형 에서의 마음을 회유해봅니다. 그 방법이 무효로 돌아가자 야곱은 자기가 가진 짐승을 두 떼로 나누어 형이 이 떼를 치면 자기는 저 떼를 가지고 도망하리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7-8절). 또 하나님께 기도도 드려보았습니다(9-12절).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야곱은 550마리나 되는 많은 짐슴 떼를 예물로 보내어 자기를 향하여 분노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풀어 보려고 했습니다(13-20절) 그러나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자기를 향하여 오고 있는 에서의 발길을 돌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만큼 에서는 완강했습니다. 야곱은 이런 현실 앞에서 크게 두렵고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쓰면 쓸수록 불안은 가중되고 두려움은 더해만 갔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불안과 공포를 완화시킬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공포와 불안은 평범한 감정이 아닙니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줍니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건강한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야곱이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은 경제문제도 아니였고, 질병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에서로 인한 두려움 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공포와 불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공포와 불안의 근본원인은 바로 인간 때문입니다. 존 플라벨은 『인간은 두려워할 때 사람은 악과 동행한다』고 했습니다. 잠언 29장 25절에서는 『사람은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쁨과 희열에 젖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향해 돌아가고 있던 야곱은 형 에서의 도전 앞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최대 문제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게 어떤 사람이 오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야곱의 경우처럼 지금 우리에게 에서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에서의 문화가 물밀 듯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서의 문화는 들사람 문화입니다. 쾌락주의 문화입니다. 물질만능주의 문화요, 폭력주의 문화입니다. 오늘날 무분별한 서구문화야 말로 에서의 문화요, 사탄의 문화입니다. 이로 인하여 오늘의 청소년들은 마치 들사람 에서처럼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가정 밖으로 쏘다니고 있고, 익숙한 사냥꾼 에서처럼 오늘날 우리의 영혼을 사냥하는 마귀 사탄의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폭력주의에 현혹되어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부모들은 자신과 자식들로부터 이러한 사탄의 문화의 공격을 막을 수 없어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안과 공포의 진정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고도 달려오는 에서의 발길을 멈추는데 실패하자, 비로소 얍복 강가에서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과 종들과 모든 짐승들을 다 얍복강을 건네고, 홀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밥을 새워 씨름하였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 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하셨지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을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하시면서 옛 사람 야곱의 이름 대신 새 사람 이스라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변화의 순간이야말로 모든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새 사람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보여줍니다. 공포와 불안은 옛 사람의 특성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모든 불안과 공포가 다 사라집니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에 떨던 야곱에게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마음 속에 모든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고 평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34편 4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온 밤을 지새운 야곱도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어제의 야곱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된 새 사람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자식을 맡기고 자기를 그들 앞에 서서 에서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창33:3) 이것은 참된 용기는 변화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만난 에서는 어제까지의 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변해 있었습니다. 미움의 에서에서 사랑의 에서로 변해 있었습니다. 에서는 달려왔습니다. 야곱을 맞아 입을 맞추고, 그를 진심으로 영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할 가장 시급한 본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두렵습니까? 불안하십니까? 답답하십니까?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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