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미션(cmc) 2009. 1. 26. 21:07

'지상설교'요 19: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박주완 목사(길동교회)

 

여러분들에게 가장 「가치(값어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요? 바로 여러분들과 항상 『같이 있는 사람』 =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고로 가치(價値)있는 사람은, 같이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라도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친밀감이 적지만, 옆 집에 같이 있는 사람은, 「이웃 사촌」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 가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있는 사람이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두들은 항상 하나님, 예수님과 같이 있으므로, 예수님께 가치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자리의 여러분들은 좋은 일에는 물론, 나쁘고 험악한 일이 있을때에도,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남자 넷, 여자 하나, 또는 여자 넷 남자 하나의 사건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날에는, 남자 넷, 여자 하나였습니다. 요셉과 동방박사 세 사람 합해서 네사람, 그리고 여자 마리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을 당하실때에도 합 다섯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탄생때와는 그 상황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이렇게 해서 여자가, 합 네명이고, 남자는 한 사람인데, 그는 바로 본문의 사도 요한이었다. 여기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막 15:41을 보면,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였다. 예수님의 품에 안기기도 한 자였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잡히셔서 심문 받으실때에도 그 자리까지 가기도 했고, 십자가밑에까지 가까이 가서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신 후,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여자 넷, 남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 요한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도 요한은 십자가의 체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요한은 1' 말씀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요한 일,이,삼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2'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요한 서신들을 볼 때, 사랑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이 나이 많았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할 기력이 없었는데도, 여러 사람들에게 부축받아 강단에 서서는, 숨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말하는 말은,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조금 쉬었다가 또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하고, 또 조금 쉬었다가 다시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도 하고, 감사 감격도 하고, 새로운 마음 가짐을 가져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체험이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와 집사가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체험할 수 있습니까?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육체와 함께 모든 정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가까이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그래서 합 4명의 경우를 봅시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처음에는 웬일인지, 멀리 있었다. 막 15:40 「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즉, 이 사람들이 멀리 있었던 것은, 너무 슬펐던지, 알지 못했던지, 게을러서든지, 로마 군병들에게 제제를 받아서이든지, 로마 군인이 무서워서든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서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성경이 밝히지 않고 있으니, 그 이유는 덮어둡시다. 국가도 과거만 들추면 발전이 없고, 서로 화합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위화감만을 주며, 분열만 만들어 지며 퇴보합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요, 가정도 마찬가지요, 대인관계도 마찬가지며, 개인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원인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에 있었기에 현재도 있지만, 특히 과거를 거울로 삼아 고칠 것은 고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면서, 앞으로 더 전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 지금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더 좋은 경우는 원인도 좋고, 과정도 좋고, 결과도 좋은 것입니다. 지금 나타난 현상, 지금의 결과는 어떠합니까? 이 여인들은 처음에는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가, 점점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가까이,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점점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십자가 곁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만 바라보며 나아가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앞으로, 앞으로, 점점도 위로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갑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고, 순종., 봉사하고 서로 사랑할 때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위만 보고 나아가고 올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의 발을 지켜 주시어서, 돌에 부딛히지 않게 하시고,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뒤돌아 서지 않게 하시며, 우리들의 발을 붙잡아 주십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시고, 또 그 자리에서 답보하고만 있으면서 만족한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 멀리 있는 것, 점점 멀리 떨어지는 것은, 한두번 기도회,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되고, 기도하지 않고, 성경 읽지 않는 것,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 등등입니다. 이런 일이 점점 예수님 곁을 멀리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 73:27,28 우리는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님께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다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엄청난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두번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므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는 큰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베드로처럼,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이렇게 네명처럼, 얼마전까지는, 조금 전까지는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멀리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십자가에 가까이, 십자가 곁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녁을 맞추려 할 때 멀수록 정확도가 낮고 빈도 수가 적다가, 더 멀면 완전히 맞추지 못합니다. 가까이 있을수록 언제나 정확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곁에 있어야 항상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말씀 순종을 올바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처음부터 십자가 가까이 있다가 변하지 않고, 지금도 가까이 있고, 그것이 계속 진행이 되어 나중에도, 마지막까지 십자가에 가까이 가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체험하는 사람은 주님의 교회에 좋은 일군이 되고, 이런 좋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십자가에 가까이 있는가? 아니면 멀리 있는가? 십자가를 멀리서만 보고 가까이 가지 않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습니까?


3. 작은 야고보와 같이 되지 맙시다. 막 15:40에 보면 「작은 야고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멀리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있다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 그래서 합 네명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야고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까이 갔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이런 작은 야고보와 같이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외면적으로는 주님의 제자요, 믿는 사람 같은데,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니까, 또는 세상의 좋은 것들이 유혹하니까,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만 있다가, 간데 온데 없이 사라지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여인들처럼, 처음에는 멀리 있었다 해도, 결국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이 있을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항상 예수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 등 모든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까이 하며 체험하는 일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세지말을 사는 모든 성도들도 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어서 십자가를 체험하고, 사랑으로 서로 돕고 하나님의 일을 더 잘, 더 많이, 더 크게 감당하므로 예수님께와 교회에 가장 가치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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