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사람들 (요4:27~30)
진정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내일 향해 도전할 수 있어
●수치심을 가진 사마리아 여인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치심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에게도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는 수치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인생에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수치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수치심 가운데 인생을 살았던 또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동거하며 살고 있는 남자도 온전한 남편이 아니었습니다.(18절) 그래서 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고 있는 수치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 정오에 물을 길러 왔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여인을 이곳까지 찾아오셨고 수가성 우물가에서 이 여인을 만나 주셨습니다. 생수에 관하여 말씀하시던 예수님은 마침내 자신이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기다렸던 메시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로라”(26절) 이 죄 많은 여인, 수치러운 여인이 메시야이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인생의 오점을 가지고 부끄러움 속에 살던 이 여인이 물을 길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그러면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요? 29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가장 먼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예수만 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고 했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이란 무엇입니까? 남편을 다섯이나 둔 일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치운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여인은 “내게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며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에 대하여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가 자신의 아픈 과거의 상처를 건드릴까봐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지내던 여인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 앞에서 외치기 시작합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담대하게 자신의 과거까지 드러내며 외치기 시작합니다. 자기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에게로 달려가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을까요? 불과 몇 분만에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순간 자신의 모든 수치가 벗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모든 죄책감에서 해방되었고 그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이 벗어졌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만나면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해방되는가?
그러면 왜 예수를 믿으면 수치심과 모든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될까요? 예수님이 내 대신 수치와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에서 해방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만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결과인 수치와 부끄러움으로부터도 자유함을 얻습니다. 인간이 짓는 모든 죄에는 죄의 형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죄의 형벌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고통입니다. 수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온갖 고통과 수치와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죽음만이 아니라 수치와 부끄러움도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은 수치를 숨기고자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수치심을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는 수치는 무화과 나뭇잎으로는 완전히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을 때 무화과나뭇 잎 대신에 가죽 옷을 지어 입힌 다음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가죽 옷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게 될 거룩한 의의 옷을 말합니다.
●수치가 벗어진 사람들
오늘 구원받은 사람들은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의 정복에 앞서 길갈에서 할례를 받게 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수5:9) 그런데 그곳 길갈의 뜻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애굽의 수치란 무엇입니까? 430년 동안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말합니다.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길갈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오늘 예수를 믿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는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고 벗어지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자라야 가나안 땅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길갈이라는 곳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영적인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자는 내일을 향하여 도전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주위를 보십시오.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인생의 수치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간 사람들입니다.
▨ 설교노트 예수를 믿음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이 있다.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자만이 영적전쟁을 감당할 수 있고 내일을 향하여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