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미션(cmc) 2009. 1. 26. 22:58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16:16~24)

김선규 목사 (성남성현교회)

 

근심 뛰어넘는 진정한 기쁨을


주님을 깊고 뜨겁게 만나면 좌절조차 희망으로 변해     여인들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10개월 동안 가히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산모의 고통의 절정은 진통하다가 출산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이 크기는 하지만 출산 후 아기를 보는 더 큰 기쁨과 즐거움에 산통을 다 잊어버립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특히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로마로 가게 되기는 했는데, 어이없게도 죄수의 몸으로 갔습니다. 큰 광장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그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할 만도 한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빌1:12)고 말합니다. 감옥에 갇히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만큼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그가 복음을 전할 대상을 평민이나 노예로 설정했는데, 도리어 군인이나 귀족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어서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이렇듯 상황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까요?    

좌절하지 않습니다

  뜻을 깨달은 사람은 절대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한계상황을 극복하며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염려와 불안 때문에 평안을 잃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16). 제자들은 불안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는 아픔이 있지만, 부활하심으로 절망과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밤중에 급히 군대를 급파했습니다. 적군에 의해 겹겹이 포위된 것을 보고 엘리사의 종은 절망했습니다. 현상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을 본 엘리사는 태연했습니다. 현 상황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현상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을 잃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잃습니다. 제자들은 가족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사람이었고 야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꿈과 야심이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생각하면서 절망했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죽음은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을 하기 위한 통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만 크게 봤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주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마틴 루터도 종교개혁을 수행하던 중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으면서 근심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마침내 루터의 부인이 상복(喪服)을 입고 슬프게 울었습니다. 루터가 놀라 “누가 죽었소?”라고 물었을 때, 부인은 정색을 하면서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간밤에 돌아가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루터가 “어떻게 하나님이 죽으실 수가 있느냐?”라고 반문할 때, 부인은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일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루터는 자신이 주님을 잠깐이나마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믿음을 추스려 다시금 일어났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근심, 걱정,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근심조차도 기쁨으로 변합니다


주님은 여러 번 수난을 예고하시면서 동시에 부활을 빠짐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수난에만 집착했고, 부활의 소망은 커녕 부활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반응했습니다. 제자들의 가슴속에는 근심과 염려, 괜히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머리속엔 온통 물음표로 꽉 찼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에겐 이전에 가졌던 수많은 의문들,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죽으신 주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가슴 가득이 차올랐던 근심이 소멸되었습니다. 근심 대신에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 속에 근심, 염려, 걱정, 좌절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면 단적으로 우리가 아직 주님을 깊게, 뜨겁게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새롭게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한번 만난 것으로 끝나지 말고 우리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매 순간 만나야 합니다.    

구하여 받게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통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현상 뒤에 살아 계신 주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면 반전, 역전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장 확실한 변호자요, 중재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응답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응답은 하나님과의 교통의 확인이요,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펄젼 목사는 “10년 동안 근심 걱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 동안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 걱정, 염려합니까?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반드시 시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응답 있는 신앙생활, 활기 있는 생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근심을 뛰어넘는 기쁨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 설교노트   사람은 보는 것에 약하다. 그것이 실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변화시킬 수없는 영역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체념해 버리고 만다. 안타까운 것은 성도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보이는 성도들이 현상에 속아 근심과 절망의 삶을 살지 말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승리와 영광의 주역이 되길 의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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