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

미션(cmc) 2009. 1. 27. 07:16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삼하 6:6~11)

김제돈 목사(진주성남교회)

 

기쁨은 축복을 불러옵니다


즐겁게 신앙의 기본 지킨 오벧에돔의 믿음을 본받아야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뜻은 복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자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축복의 전당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으니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을 받아야 할 성도들이 오히려 더 괴롭고 힘들게 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본문을 통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과연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5:18~19에 보면 ‘낙을 누리는 것이 복이며 이 낙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지식, 또는 권력이 주는 낙은 금방 지나가는 쾌락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은 다 가져도 만족이 없고 갈증만 더해 질 뿐입니다.
전 6:3에도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많은 자녀들이 성공하고 건강하게 장수한다할 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낙태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그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영적 축복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게 되고 행복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전도지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지를 전하기 전에 우리의 얼굴부터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항상 웃는 밝은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적인 축복위에 육적인 축복도 더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영계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물질계의 하나님 이십니다. 마 6:33에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더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선진국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이고 후진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입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사단이 만든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공산국가는 저주를 받아 다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대적한 북한은 저주를 받아 300만명이상 굶어 죽은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헌금해서 교회 짓고 선교사를 파송하며 하나님을 잘 섬긴 남한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아 잘 살게 되었습니까?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영육 간에 복을 다 받아야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지 알기위해 복 받은 한 사람의 모델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오벧에돔이 법궤를 불과 석 달 동안 모셨는데 하나님은 그와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외에도 오벧에돔의 이름(대상 13:14, 26:5)이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말씀이 항상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아비나답(삼상 7:1~2)이라는 사람은 똑같은 법궤를 20년이나 모셨는데도 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자기가 직접 법궤를 모시기 위해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법궤를 운반하게 되었습니다. 운반 책임자는 웃사와 아효라는 사람이었는데 아비나답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웃사와 아효도 법궤를 20년이상 모신 것입니다. 그런데 법궤를 운반할 때는 반드시 레위지파 중에서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하는데 그들은 새 수레에 싣고 운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뛰는 바람에 법궤가 흔들리자 뒤에서 따라가던 웃사가 법궤를 붙들다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는 피 묻은 손, 다시 말하면 깨끗한 손으로 만져야 하는데 더러운 손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에 손을 대었으니 하나님이 진노하사 치신 것입니다.
웃사는 20년이나 법궤를 모셨지만 법궤를 운반법도 모를 정도로 기본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으려면 신앙의 기본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주일성수와 십일조입니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교회를 수십 년을 다녀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웃사는 자기가 원해서 법궤를 모신 것이 아니라 억지로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모신 것입니다.   직분 때문에,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껍데기만 가지고 습관적으로 교회를 출입하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담을 가지고 불평하면서 하는 봉사는 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웃사는 자기 생각대로, 편리한대로 법궤를 옮길려다가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웃사가 죽자 다윗은 겁에 질린 나머지 법궤를 모시지 않겠다며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부담스러워 하고 거부했습니다. 그 때 법궤를 모시겠다고 자원한 자가 있었으니 오벧에돔이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기쁨으로 법궤를 모시는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 가문, 직분으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잎사귀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잎사귀가 아니라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차라리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습니다. 그러므로 오벧에돔처럼 복 받기를 원한다면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하십시오. 주일성수, 십일조, 예배, 새벽기도, 봉사, 전도, 순종도 억지로 하지 말고 즐기면서 하십시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웃으면 온 가족이 웃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하십시오. 그러면 성공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복 주시는 오벧에돔의 집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설교노트   직분이 높고 연조가 오래될수록 더 복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현실은 더 불행하고 힘들게 사는 자가 의외로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비나답과 오벧에돔을 살펴보면 그 해답이 있다. 모두 그 해답을 찾아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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