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오늘의 나실인

미션(cmc) 2009. 1. 27. 07:22

오늘의 나실인(삿16:15~22)

이의효 목사(수원동부교회)

 

목숨건 기도만이 사는 길

  영적 권위 잃은 교회, 회개서 능력 얻어야     1. 삼손은 여자에 약했다.
삼손이 태어나던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에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잉태함이 없었습니다. 셋째는 안식이 없었습니다. 꼭 우리시대와 같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는 블레셋이라는 이방 나라에 짓밟히고 있었고 백성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때, 삼손이 나실인으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중에 일정기간, 또는 한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서약제도를 마련해두셨는데 이가 곧 나실인 제도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기간 동안 발효된 음료나 포도주,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내신 그 시대의 지도자로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해야 하는 사사(士師)요 나실인이었던 것입니다.
사사기 14장에 청년의 삼손 이야기가 나오는데 딤나라는 곳의 한 블레셋 여자를 보고 그녀에게 반해서 부모에게 결혼시켜달라고 조르는 장면입니다. 누구나 한두 가지의 약점은 가지고 있습니다. 삼손은 바로 여자에게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의 사명을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감당하려고 하는 일보다 세상을 즐기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사랑해선 안 될 이방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므로 문제가 야기됩니다.    

2. 세속에 물들어 가는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언약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의 문화에 허물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언약의 백성들이 싸워 이겨야 할 대적임에도 흰 물감에 회색이 섞이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가 조용히 들어와 물들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고 그리고 들어가서 그녀와 더불어 말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 여인들과 한 방에 있었고 나중에는 무릎을 베고 누워있게 되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의 현상을 나타내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수요 대적이었던 가나안이 이젠 친구가 되고 연인 사이가 되고 한 집에서 같이 지내다가 나중에는 가나안의 포로가 되어 버린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삼손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삼손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늘의 교회, 곧 성도와 지도자를 생각합니다. 교회도 처음에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세상과 싸웠습니다.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려고 자기를 지켰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거짓과 속임의 영이 침투할 때에 하나님은 교회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세상과 대항하여 싸웠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였으며, 그 때문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큰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교회를 별로 핍박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교회나 세상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너무 닮아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어느 때는 세상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달려듭니다.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아갑니다. 삼손이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누웠듯이 교회가 이제는 부와 기득권과 편안함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습니다.    

3. 삼손, 들릴라에 실토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사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하였습니다. 합법적인 결혼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들릴라는 삼손의 마음을 다 빼앗아버렸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의 마음이 들릴라에게 완전히 가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를 은(銀) 천 백 세겔을 주고 매수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냅니다. 드디어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 힘이 약해져버렸습니다. 사실 삼손의 힘은 외적인 머리카락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나실인으로서의 성별의 상징이며, 외적인 증거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힘이 사라진 것은 나실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들릴라에게 진정을 토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실패를 통하여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지도자들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삼손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눈이 뽑혔다는 것은 영적인 안목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놋줄에 묶어 옥중에서 맷돌을 돌린다는 것은 완전히 사탄의 세력에 지배를 받아서 죄의 종이 되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삼손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기도합니다.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삿 16장 28절). 회개와 목숨을 건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능력을 잃고 조롱과 수치를 받는 이 시대의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귀한 진리를 전해줍니다. 목숨을 건 회개와 기도의 회복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나실인”은 우리들 교회요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성도요 직분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거룩한 나실인들로 구별하여 세우셨고 우리들의 거룩한 헌신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회개와 기도를 통하여서 일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사탄의 세력들을 결박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오늘의 나실인”들의 사명이며 소망인 것입니다.    

설교노트
암 2장11-12에 보면 선지자와 나실인을 타락케 한 일에 대하여 지적하며 책망하신 말씀이 있다. 선지자로 말 못하게 입을 봉하며 나실인을 포도주로 타락케 한 죄악은 그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절제를 통해서 선지자와 나실인의 사명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와 성도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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