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흔적'을 가집시다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깰 때 영광의 아침 맞아 위기를 무엇으로 극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20여년의 이민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야곱, ‘발뒤꿈치를 잡았다, 거짓말쟁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타향살이 20여년을 뼈 빠지게 일하면서 험한 세월을 고단하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수완도 좋았습니다. 성공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 에서를 생각하면 야곱은 기가 죽습니다. 고향으로 가까워지면서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함이 이제는 두려움으로 변합니다. 매사에 치밀하게 처신했던 야곱이기에 선발대를 보내어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형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형에게 줄 깜짝 놀랄 정도의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과거 팥죽 한 그릇에 비교도 안 되는, 평생 벌어도 못 다 준비할 만큼의 선물을 형에게 주려고 준비시켰습니다. 형의 마음을 감동시킬 말과 친절을 제공할 사람을 앞서 보내놓고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자신은 맨 뒤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마음 놓이는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는 하였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20여 년 전 고향을 떠나올 때, 형이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리며 땅을 치던 그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립니다. 형 에서가 지옥의 사자처럼 다가옵니다. 자기 가족을 모조리 쳐 죽이고 재산을 몽땅 빼앗아 가리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야곱은 지금 왕창 무너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곳이 약속의 땅이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타향살이 20여년을 지나오는 동안에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온 삶이 아니었습니다. 반듯하게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불안한 것입니다.
너 같은 놈은 안 돼! 캄캄한 절대 고독의 순간, 야곱은 얍복 나루를 건너려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앞길을 막습니다. 하나님의 사자(使者)입니다. 언약의 땅을 지키시던 하나님께서 야곱의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너 같은 도둑놈은 이 땅에 들어올 수가 없어!”,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요령껏 재주부리며 살겠다고 날뛰던 너 같이 간사한 놈은 이곳에 들어올 수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형과의 화해문제로 고심하였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죄의 문제를 들고 나오신 것입니다. 의롭고 거룩한 자만이 이 땅의 경계를 넘을 수 있도록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통하여 야곱의 출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며,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머물러 있는 땅이기에 그렇습니다(신 11:12).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통곡하며 애원합니다.(호12:4) 하나님의 사자가 “나를 놓으라”고 재촉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나를 이 어둠의 땅에 내버리지 마옵소서. 나는 약속의 땅에 살고 싶습니다”하고 애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버티고 있던 환도 뼈를 부러뜨립니다. 환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것은 이제까지 야곱이 의지해오던 자기 처세술, 자기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면서 쌓아온 인생 경험, 돌담처럼 굳게 구축해온 자기 왕국이 왕창 무너지는 사건입니다.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는 것입니다. 20년 외국 생활에서 터득한 숱한 요령과 경험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야곱은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말합니다. “이제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 라고 선포합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기꾼이라는 그 이름으로 무슨 축복을 받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어주신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다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흔적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의 환도 뼈를 쳐서 평생 절름발이로 절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몸에 ‘하나님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흔적은 자기는 완전히 깨어지고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왕국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그는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의 지명입니다. 하나님의 흔적을 가진 사람만이 브니엘의 영광의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여기 말하는 ‘하나님의 흔적’이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맞은 징계의 흔적입니다. 회개의 흔적입니다. 기도의 흔적입니다. 긍휼의 흔적이요 용서의 흔적입니다. 놀라운 일은 야곱이 하나님의 흔적을 가지고 얍복 나루를 건너서 형을 만났는데, 오히려 형이 먼저 달려와서 야곱을 끌어안습니다. 아름다운 화해가 이루어져 형제가 20여 년 만에 반갑게 부둥켜안고 감격스런 해후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내가 변하니 세상이 다 변하고 원수같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느껴집니다. 미운 사람이 고운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설교노트 선진국 진입, 희망의 나라로 전진, 우리 비전의 실현 등을 야곱의 생애와 얍복 나루, 이런 틀에서 말씀을 상고하였다. 선민이 선민다워야 하듯이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희에게 여러 사건과 징조를 주었지만 너희는 여전히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느니라.(암4장 6, 8, 9, 10, 11절)의 말씀을 아픈 마음으로 되새겨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