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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존귀하게 여길 때 희망과 소망의 비전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랍비가 북쪽에 있는 변방 마을을 살펴보기 위하여 두 사람의 랍비를 시찰관으로 보냈습니다. 두 랍비가 북쪽마을에 도착하여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고 말하자 처음에는 마을 치안 책임자인 경찰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군인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계속해서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나려는 사람은 경찰이나 군인이 아니라 회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경찰이나 군인은 때에 따라 마을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이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 아닙니까?” 민수기 16장과 17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를 거스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대적자 250명과 그의 친척까지 함께 지진이 나서 땅 속으로 다 삼켜지는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무지한 이스라엘 회중이 모세와 아론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죽었다고 또 원망하고 불평을 하다 이번에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1만 4천 7백 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 후에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열리게 하신 후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만큼은 후손대대로 반드시 법궤 앞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민17:10-11). 그것은 회중 앞에서 주의 종 모세의 권위와 지도력을 인정해주고 높이 세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도 지도자의 중요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한 후에 영원히 자신들의 고토로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망했지만 예레미야, 에스겔,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 같은 눈물의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훗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짓고 민족을 회복하였으며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산출하는 영광스런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유대인에게 이스라엘의 랍비는 아버지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역사의 지평에서 지도자는 얼마나 중요한 존재입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진왜란 전에 율곡 이이와 같은 분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던들 우리 민족은 왜군 침략의 치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은 민족의 지도자를 좌천시키지 않았다면 어찌 칠천량해전이라고 하는 수치와 패배의 쓰라림을 겪었겠습니까?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은 조선 사람들의 코와 귀를 베어갔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코와 귀를 베어 갔는데 심지어는 금줄이 쳐져있는 집에까지 들어가 해산하는 임산부의 코와 귀를 베어갔습니다.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 의하면 당시 갓난아기는 죽은 엄마의 젖꼭지를 빨며 울부짖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를 방황하였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민족은 임진왜란의 수치를 당하고 난 후 불과 수십 년이 지나서 병자호란을 당하지 않습니까? 당시 인조대왕은 얼마나 간이 쪼그라 들었겠습니까? 또한 삼전도비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나라 임금인 인조대왕이 청나라의 황제 태종 앞에서 항복을 하는 예로 큰 절을 세 번하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바닥에 아홉 번이나 찧어 박았다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민족은 청나라에 왕자와 대신들의 아들들을 인질로 데려가고 금을 1년에 만 냥씩이나 바치며 해마다 수많은 처녀를 바쳐야 할뿐 아니라 남성의 상징인 고환을 잘라서 말린 것을 바쳐야 한다는 치욕과 수치의 굴욕 문서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사인을 한 것입니다. 왜 이토록 참혹한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런 올바른 지도자를 존중하고 알아보지 못한 백성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무지가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한 지도자를 예비하시고 부르시고 훈련하셔서 세우시며 쓰시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보내신 지도자와 사자들을 잘 받들고 존중하며 순복했던 역사와 사회는 흥하였지만 지도자를 거부하고 배척했던 사회는 스스로 망하고 파멸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가르치는 자를 은근히 배척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꿈틀거리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목사의 도덕적 실수와 영적 퀼리티가 하락한 것에도 원인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한 기류는 교회 지도자와 성도가 하나 되어 사이비 이단과 싸우고 하늘의 악한 영과 싸워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서로 다투며 소모적인 전쟁을 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학교 교사마저도 인기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대접 받으려는 자리, 영광 받는 자리에는 사람들이 몰리는데 교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희망과 미래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민족의 등불이 되고 정신의 지표가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를 존중하고 교사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특별히 영혼의 지도자, 성도의 영혼이 경성하기를 위해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처럼 하는 영적인 지도자를 존중해야 합니다(히13:17). 그럴 때 민족의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찬란한 미래의 희망이 밝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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