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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섭리에 의지합시다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이유이며 주관자입니다 사람은 한 평생 이 세상이라는 삶의 장소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하게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의 삶은 고통으로 한숨이 그칠 날이 없고, 어떤 사람의 삶은 무엇을 해도 실패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옛말에 “이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71편 14절에서는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양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에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배를 덮을 정도로 심하게 일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제자들은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스위스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칼 힐티(Carl Hilty)는 “고난이 없는 삶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불건강한 삶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고난이란 그저 고통과 절망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주관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첫째, 연약한 인생은 고난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본문 25절에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아픔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에게는 힘겨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일랜드 출신 스크리븐(Joseph Medlicott Scriven)은 고백하기를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시험, 걱정, 모든 괴롬이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두가 다 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의 고난은 오히려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고난을 당할 때 성도는 함께 계신 주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이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의 뜻은 “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주님이 함께 계시는데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주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 25절에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도 주님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본문 26절 하반절에 “곧 일어나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다도 바람도 잔잔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며 생사화복을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6월은 우리 민족이 영원리 잊지 못할 한국전쟁이 발발한 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의해 한반도는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부산 인근만 남겨놓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때 UN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히 열렸고,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유엔군 파병이 전격적으로 결의된 것입니다. 이것을 역사학자들은 기적이라 말하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고백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우리 민족을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나라의 흥망성쇠를 섭리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며, 가정의 행복을 인도하시는 목자장이 되십니다. 시편 115편 11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오, 너희 방패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주관자이신 주님의 손을 붙들고, 오늘도 또 내일도 주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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