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성도의 즐거움

미션(cmc) 2009. 1. 27. 08:14

성도의 즐거움(롬5:1~16)
김성천 목사(여수제일교회)

   
  ▲ 김성천 목사  

미래 소망이 있어 즐거워합니다

오늘 닥친 고난도 인내하며 기쁘게 이겨나가야

 

여러분은 어떤 즐거움으로 사십니까?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성도의 참된 즐거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강론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즐거움은 신분의 변화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롬5:1상).

지금은 미국의 대형 교포 교회의 충성스러운 장로님이 되셨는데, 한참 청년 시절 사업하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 생활하지 않고 세상에 푹 젖어 사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교회에서 3일간 부흥회를 하는데 꼭 참석해 달라고 애걸복걸 사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소원이라고 하니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날 설교하는 목사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아예 기둥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흥회 마지막 날 목사님이 설교하던 중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왜 거기 숨었느냐”라는 말씀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때 그분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라며 눈물을 흘리고 통성 기도 시간에 목 놓아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나니까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불학무식한 머슴이 대단한 사업가로 변신한 것도 기쁜 일이지만 죄인이 예수 믿고 의인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특권 때문에 즐거워합니다(롬 5:2상).

교회 역사 속에 조지 뮬러라는 기도의 영웅이 있습니다. 자신의 돈 한 푼 없이 일생토록 만 명 이상의 고아를 양육했던 분입니다. 단 한명의 고아에게 성탄절에 깨끗한 의복 한 벌 선물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평생토록 만 명의 고아를 양육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확신 있는 기도의 무릎에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 선교지에 이백만 권 이상의 성경과 삼백만권이상의 도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만 명의 주일학생을 평생토록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조지 뮬러가 그처럼 기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 어두운 과거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14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어머니가 죽던 날 밤에도 새벽 2시까지 노름을 했고, 노름이 끝난 다음에는 술을 마신 뒤 여인숙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보다 술을 더 사랑하고, 구역질나게 추잡한 음란죄를 즐겨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825년 11월 어느 토요일, 기도와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나니, 과거 죄 지으면서 느꼈던 즐거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하나님께서 끝없이 부어 주시는 기도의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영광스러운 미래 때문에 즐거워합니다(롬5:2하).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스포츠 축제에서 메달 확정이 된 스포츠 영웅들은 아직은 시상대에 올라가서 영광스러운 금메달을 목에 매달고 있지는 않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미리부터 흥분이 됩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코치와 감독, 열광적으로 응원하였던 조국의 팬들마저도 감격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성도들의 기쁨이 그와 비슷합니다. 아직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천국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우리의 머리에 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스러운 미래의 그 순간을 그려볼 때 우리는 벌써부터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합니다(롬 5:3-11).

사람들은 누구든지 환란이나 고난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환난 중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비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끝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앎이로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안다’는 것이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아무리 역경의 터널이 있고, 고난의 밤이 찾아오는 환난이 있을지라도 그 환난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때문에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교훈입니다.

엄격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성도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가차 없이 지독한 벌을 받거나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매질을 당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아닌 타인에게 그런 혹독한 매질을 당했다면 일생을 두고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당했던 체벌은 하나의 추억 거리로, 훗날 기쁘고 즐겁게 웃으면서 회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녀들이 거짓말을 하고 부모의 돈을 훔쳤을 때 호되게 매질하는 부모의 의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빠와 엄마가, 자녀인 내가 정직하고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민족과 인류 앞에 유능한 인물로 성장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매질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생각하면 할수록 어린 시절 엄격하셨던 부모의 양육 방법, 즉 사랑의 매질이 고맙고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환난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합니다. 인내는 우리말로 ‘참는다’는 의미이지만 헬라어로는 ‘세상을 이기는 정신’을 뜻하고 있습니다. 환난 속에서 미래 지향적인 소망을 갖게 됩니다. 나그네 생애가 너무 안락하면 천국이 그리워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환난 중에 있을 때 장차 다가올 영광스러운 천국을 소망하게 됩니다.

설교노트
최근 성도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설교자들은 회중들을 웃게 하는 재능 있는 분들입니다. 감성시대에 누구든지 재미있는 것을 추구합니다. 성도가 누려야 될 진정한 즐거움을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본 설교가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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