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하늘나라 시민의 자세

미션(cmc) 2009. 1. 27. 09:14

하늘나라 시민의 자세(빌 3:17~21)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영원하신 주님이 소망입니다

헌신하고 순종하며 하늘나라의 영광을 사모해야


   
  ▲ 최요한 목사  

명절 때가 되면 북한 땅이 가까운 휴전선에는 많은 실향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보며 흘리는 눈물과 애끓는 탄식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고향이 무엇인지 그들의 평생소원은 고향 땅을 한 번만이라도 밟아보는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 시 일본에 의해 징용이나 학도병으로 끌려간 사람들 역시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었다고 합니다.

시편 137편에 보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멀리 떨어진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육신의 고향으로서의 예루살렘을 그리워한 것도 있겠지만, 그들은 영적인 측면에서 예루살렘을 더욱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즐거이 지냈던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들에게 인생의 본향인 하늘나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줍니다. 특히 하늘나라의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따라 사는 육신의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또 스펄전의 말대로 세상과 신앙의 중간지대에 사는 것도 원치 않으십니다. 오직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섞이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그것이 하늘나라 시민의 삶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늘나라 시민의 삶의 자세에 대해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삽니다(17절).

바울은 17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을 합니다. 실천적 모델로 자신을 내세운 것인데, 고전 11:1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자신처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본이 되는 삶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요즘 교회나 교인들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입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뒤 일본 헌병대의 일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 누가 누군지를 모릅니다. 무라까미라는 헌병소장이 부하인 다나까에게 나가서 기독교인들부터 먼저 알아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은 했으면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은 거짓말 안 해”라고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소수였지만 역사와 사상을 이끌고 민중의 지도자들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짓 없는 진실한 삶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했기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열심히 닮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도 나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닮으라는 권면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땅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19절).

빌립보 교회 내에는 반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3장을 살펴보면 3:1~11까지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경계’로 바울은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율법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에 대해 엄히 경계했습니다.

3:12~21은 ‘반율법주의자들(반도덕주의자들)에 대한 경계’로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완전해졌기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이 방종하게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반율법주의자들을 경계할 것을 말합니다. 저들은 복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만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순종과 헌신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기는 믿었지만 삶의 모습은 불신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을 목표로 영적인 경주를 해 나가는 성도들은 구원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던 것입니다. 19절에 나오는 것처럼 저들의 신은 배고, 그들이 영광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부끄러움이며, 그들이 구한 땅의 영광은 그들에게 멸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요구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고 적극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의 영광을 구하고 하늘의 것을 구하지 않는 잘못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20절).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하늘나라 시민들은 인생이 나그네 길이고, 풀의 꽃과 같이 쉬 지나간다는 것을 압니다(히 11:13; 사 40:8). 그래서 세상의 것에 욕심을 두지 않고,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며 영원한 주님이 되시는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리며 성실하게 생활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확고부동한 종말론적인 신앙이 있었기에 그들은 순도 높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을 마음 속에 생각하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설교노트
빌립보 사람들은 비록 식민지 땅에 살지만 자기들은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로마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님 계신 하늘 본향을 생각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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