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믿음의 가족(딤전 5:7-8)

미션(cmc) 2009. 6. 4. 10:04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믿음의 가족


(딤전 5:7-8)

(딤전 5:7-8)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세상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과학적인 산물이라면,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와 만물입니다.
 천지와 만물들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시며, 아름다우신 분인가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께 가장 많은 영광을 돌려야 할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가정을 만드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사업에 성공을 하고, 사회적으로 출세하였을지라도 가정이 불화하면 그 사람의 일생은 불행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 주신 가정은 찬밥이 아니라 마치 쌀을 담그고 불을 때고 뜸을 드려 만드는 새 밥처럼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행복을 위해 가족들 모두에게 각기 다른 책임과 의무를 부여 하여 주셨습니다.
 행복하지 못한 가정의 공통점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이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서로 원망 불평을 잘하며, 자기 책임에 대해서는 태만히 하며 행복하지 못한 가정의 책임을 남편은 아내, 아내는 남편, 부모는 자식, 자식은 부모 탓으로 전가하는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온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화기애애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족 각자에게 맡겨주신 책임과 역할을 얼마나 잘 감당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정의 달 5월에 매주 살펴본 성경 말씀으로 어린이 주일에는 부모의 책임, 어버이 주일에 자녀들의 의무, 부부주일에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의 달 5월 마지막 주일에 부모형제, 부부, 온 가족이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과연 가정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행복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자 합니다.

 

1. 행복의 원리-신앙과 삶의 균형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반드시 일정한 법칙과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 법칙이고, 창조의 질서이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행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복한 사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행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가 바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바른 신앙이고, 또 하나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균형 잡힌 신앙과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 원리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인 신앙을 가르치고, 제5계명에서 마지막 제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바른 관계인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뭇 다른 차별성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잘 믿으면 좋은 인간관계가 가능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는 인간관계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으로 십계명의 말씀처럼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여 우상을 섬겼을 때 이스라엘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왕하 17: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이는 자기 자식을 우상에 제물로 드렸다는 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토록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우상 앞에 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는 종교라면 얼마나 비윤리적인 종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원리는 신약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켜야 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이고 인간관계에서도 그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마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균형 있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께 많은 번제물을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보다 하나님이 더 원하시는 진정한 제사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여기서 ‘나으니이다’라는 말은 ‘더 많고, 풍성하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그와 같은 균형의 원리를 가르치는 말씀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는가?라는 목회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보낸 목회서신입니다.
 그 내용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 것인가는 물론 교회와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노인, 젊은이, 과부, 가족, 나그네, 환난당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잘 섬기라고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딤후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릴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 선한 삶을 살아가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야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전도의 문도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불신자보다 악한 신자
 세상에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들끼리는 선악에 있어서 상대적인 차이가 있지만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어떨까요? 그야 말로 도토리 키 재기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실 때 과연 의인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일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이들을 보게 되면 부모가 욕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 욕이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쌍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하찮은 것을 가지고 형제지간에 욕심을 부리고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되는 동안 죄악의 때가 더 많이 묻어서 앉았을 때나 자리에 누웠을 때나 죄를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때에도 남을 비판하고 이간하며,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받게 되면 욕을 하고 팔을 걷어 부치고 싸움을 합니다.
 흔히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결국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용해서 자기 배를 불리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그것이 자기의 이름을 내고 보람을 얻기 위해서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연 예수 그리스도 외에 예외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꼽아 보세요?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비판하고 고발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마치 세상에 그렇게 살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미화하지만 껍질을 벗기게 되면 그 속에 남아있는 실체는 위선 뿐인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마음과 입술과 행위로 지은 죄값을 자기가 치루지 않고 속죄 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죄 값을 지불하는 죽음을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로 그와 같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불신자보다 더 의로운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몸을 담고 있지만 마음이나 성품이나 입술이나 행동이 불신자보다 더 나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생각하면 겸손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교회를 다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의인인 것처럼 교만해 하는 사람은 결코 의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신자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나쁜 신자, 어떤 사람은 불신자와 큰 차이가 없는 신자, 또 어떤 사람은 신 불신 간에  본이 되는 좋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은 놀랍게도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일까요?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주일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부정한 돈을 받고 남에게 선을 베풀지 않는 사람일까요? 놀랍게도 오늘 성경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자기 친족이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여기서 친족은 자기 자신에게 속한 가족으로 혈연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땅히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관계입니다. 그러한 책임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타 종교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교에서「자왈(子曰), 부효(父孝)는 덕지본야(德之本也)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부모에 대한 효가 모든 덕목에 기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교는 무엇보다 효도에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가르쳤습니까? 유교만도 못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심지어 구약에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는 돌로 치라고 까지 하였고 신약 여러 곳에서 부모공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역시 부모 공경을 자녀나 손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여기서 부모에 대한 효는 결코 생색을 낼 일이 아니라 부모에게 받은 은혜에 대해서 당연히 보답해야 하는 빚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효도는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데 여기서 배우게 하라는 말은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통해서 경험하고 이해하고 알게 되는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대물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효도는 육신의 부모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축복까지 약속하셨습니다.
 (엡 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3. 좋은 믿음의 가족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대신 ‘고르반’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이 곧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곡해하였습니다.
(막 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 출석과 봉사를 핑계로 부모를 섬기고 가족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정반대로 가족을 돌본다는 핑계로 예배나 봉사를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잘 못하는 사람은 둘 다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고 믿음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과, 믿음의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하는 이유와, 부부가 어떻게 서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결코 부모 공경만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부모형제 부부가 함께 산다면 그 가족까지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할지라도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여기서 자기 가족을 ‘돌본다’는 말은 ‘사전에 알아차리다, 예견하다, 돌보다, 예비하다, 배려하다, 관심을 가지다, 주의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이 가족을 돌본다는 말이 물질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마음을 주는 것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가족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 몰인정한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 화
 수원사람으로 아시아 최초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은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이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1) 안용중학교 생활기록부에 나온 박지성의 1학년 때 키는 150.2㎝(현재 175㎝). 당시 박지성은 조그만 키 탓에 '미키 마우스'라 불렸다.  안용중 시절 감독이었던 이덕철 교사는 “지성이가 입버릇처럼 '나는 성공할 거예요'가 아니라 '무조건 성공해요'라는 말이었는데 다른 아이가 그런 말을 했으면 건방지다고 꾸중했을 텐데 성실한 지성이가 그러니 믿어지더라. 워낙 한결같은 아이였다"고 했다.
 2) 고교에 진학해서도 키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는데 고3 때도 키는 167.3㎝로 코치나 지도자들이 박지성에게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라"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박지성은 그 약점을 끈기와 성실로 극복했다. 초등학교 시절 '발등 구석구석 적어도 3000번씩 공이 닿아야 감각이 생기고 또다시 3000번을 닿아야 공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코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고교 시절까지 박지성은 집에서도 무릎과 발등으로 공을 트래핑하며 놀았고, 머리로 공을 튕기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3) 박지성은 고교 3년 671일을 지각이나 조퇴 한 번 없이 개근을 했다.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은 "3년간 지성이를 지켜보며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게으름으로 재능을 썩히는 아이들을 많이 봐 왔기에 쉼 없이 노력하는 지성이의 존재는 특별했다"고 말했다. 박지성의 수원공고 2·3학년 담임이었던 이기홍(46) 교사는 박지성이 3학년 때 "공고를 다니니 자격증 하나는 따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박지성은 "네" 하고 답하더니, 축구를 하지 않는 시간을 쪼개 매일 8시간씩 한 달간 실습에 매달리더니 결국 건설재료시험기능사 자격증(2급)을 취득했다. 이 교사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축구부 선수들이 공고에서 자격증을 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4) 그것만이 아닙니다. 박지성의 효도는 대단하였는데 박지성의 부친 박성종(47)씨는 점점 이마가 넓어져 고민이 많았는데 아버지께 깜짝 효도선물을 하였는데 약 3천 가닥의 자가 모낭이식술을 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1모당 5천원에서 만원이라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금액입니다.
5) 박지성이 부모님께 최고급 전원주택을 선사하였는데 경희대 수원 캠퍼스 인근에 300평 정도 부지를 매입,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데 오는 10월 쯤 입주하게 될 예정인데 그 가격이 무려 36억이 된다는 것이다. 박지성의 측근은 “오래 전부터 박지성을 봐 왔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각별하다”며 흐뭇해했다.
  예수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 박지성이 이렇게 가족을 돌보는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고, 자기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고 가족을 돌보야 할까요?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고 놀기만 좋아하고 핑계하며, 자기 자신은 사랑하면서 가족을 돌보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좋은 신앙생활과 더불어 가정에서는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알고 수고함으로 돌보며 섬김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믿음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믿음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일지라도 만일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늘 성경은 그 믿음이 헛되며 그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오월의 마지막주일입니다. 그동안 주일마다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고, 어떻게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며, 어떻게 남편을 섬기고 아내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이 바로 가족을 잘 돌보는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가족을 돌본다는 말은 가족 중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학교를 보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자녀들이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를 미리 알고 이해하고 격려하는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들이 자녀를 기를 때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자녀들이 시험기간 때만 되면 부모는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시키려고 하고 자녀들은 할 수 있으면 더 놀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시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무의식중에 스트레스가 돼서 그 스트레스로부터 피하고 싶은 방어책을 발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기가 어렸을 때 그와 같았던 것을 기억하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를 나무람보다 이해와 격려하는 것이 오늘 성경에 가족을 돌본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중년이 되면 자신의 상실해 가는 젊음에 대해 회복하려는 두드러진 현상은 열심히 운동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면서 젊음과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자부심으로 자기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하게 됩니다. 가족의 격려와 협조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에게 뒷돈을 대주는 것보다 더 든든한 것은 어려움을 당하는 가족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온 식구가 힘들어 하는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가족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며 돈이 무한하지도 않기 때문에 아무리 가족이지만 도움의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히 도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힘들어 하는 가족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우선 내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군가 돈 안들이고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열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가정 이외에 다른 안식처를 찾지 말 것
          2. 사소한 기념일까지 기억하고 축하하기
          3. 잠들기 전까지 한번 이상 칭찬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게 하기
          4.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기
          5. 부모님에게 자주 안부하기
          6. 자녀들과 마음을 열어 대화하기
          7. 하루에 한 번은 가족들과 더불어 식사하기
          8. 핸드폰으로 사랑의 문자 날리기
          9. 가족 간에 사랑의 편지 쓰기
         10.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가정예배를 드리기.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직장이나 학교나 교회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며, 가정에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하며 형제를 사랑하고 부부간에 순종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될 때 행복한 가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