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라, 좋은 교회
(에 10:1-3)
(에 10:1-3) 『[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고 6월을 맞이하였습니다. 6 월하면 6.25 사변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6월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의 달로 지키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에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일수록 분열보다는 하나가 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만이라도 원망과 비판이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나라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흔히 난세에 영웅이 나고, 좋은 지도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좋은 지도자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일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지금 우리의 현실은 지도자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고 민심이 양분이 되어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있는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하나님께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좋은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1. 좋은 지도자
오늘 성경 말씀은 페르시아 제국의 가장 부흥을 이룬 전성기로 다리오 왕의 뒤를 이은 아하수에로 왕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티끌만큼도 흠이 없는 완벽한 지도자가 통치하던 시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단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도 인간이기에 각기 개성이 다르고 누구나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도자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나라가 평안하고 교회가 평안한 반면에 어떤 지도자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나라도 교회도 늘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흔히 지도자의 리더십의 차이라고 말하고 또한 그 영향도 매우 크지만 지도자만 유능해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측근에 좋은 협력자를 만나야 만 리더십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협력자가 참모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고 친척일 수 있고 친구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아하수에로 왕이 그 같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 왕의 뒤를 이은 아하수에로 왕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음을 이미 에스더서 전체를 통해서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야심이 만만한 사람으로 나라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그리스를 정복하기 위해 전국 127도의 지도자들을 동원하여 자그만 치 180일 동안 잔치를 배설할 정도로 이성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왕이었습니다.
대개 감성이 풍부한 사람의 약점은 이성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매사에 즉흥적이고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만조백관들이 모인 잔치자리에 예고도 없이 왕후를 초청하였다가 거절당하는 망신을 샀는가 하면, 신하들의 충동에 마지못해 왕후를 폐위시켰는가 하면, 교만하고 이기심 많은 하만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왕의 인장반지까지 몽땅 뽑아 주어 하만이 권력을 남용하게 하였는가 하면, 그 일로 인해 하만의 편이 되었던 무고한 7만 5천명의 백성들이 유다 백성들에게 무참히 살해를 당하게 할 정도로 일처리에 문제가 매우 많았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그처럼 우유부단한 아하수에로 왕이 그리스 정복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과연 누가 그러한 아하수에로 왕을 유능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의 권세가 전성기에 이르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에 10:1) 『[1]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여기서 ‘본토’는 육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바다 섬들’은 해안 지역과 섬들을 점령하여 조공을 계속해서 바치게 하므로 페르시아 제국이 육상만이 아니라 해상의 권력까지 제압한 최강국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우유부단한 아하수에로 왕이 어떻게 그 같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원인을 아하수에로 왕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 10: 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하수에로 왕이 비록 그리스와의 전투에서 거듭 패하였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추궁 당하거나, 국론의 분열이나 갈등이나, 혼란이 온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결속을 강화하여 전국 127도의 지도자들을 모아 화합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하수에로왕의 탁월한 리더십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적은 항상 외부에서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만 튼튼하게 지키면 아무리 외부적인 공격을 당할지라도 능히 견딜 수 있습니다. 외부적인 적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부적인 적입니다. 흔히 말하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점입니다. 정치적으로 여야나 사상적으로 진보나 보수나 경제적으로 노사나 빈부를 막론하고 통일을 원하고 경제부흥을 원하고 선진대국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외적인 적들을 이겨야 합니다. 그것이 군사적으로는 북한이과 경제적으로는 주변의 경쟁 국가와 무역 수출국들입니다.
그와 같은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노와 사의 입장이 다를지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가까운 일본처럼 내부적으로 결속하고 화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남침을 하고 남한을 향해 미사일을 정조준하고 간첩들을 보내는 북한에 대한 주적의 개념이 다르고, 민생을 위하는 정치를 굳게 다짐한 국회는 당리당약을 위한 갈등과 대립으로 개원조차 하지 못하고, 노사의 극한 대립으로 수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아야하는 자중지란은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되풀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중보 기도가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1) 주여! 어느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국가의 시책이나 정책이 개인이나 정당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지 말고 백년대계를 내어다 보고 정권이 바뀌어도 바꿀 필요가 없는 통합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주여! 어느 정당이 주도권을 잡든지 개인이나 이미 수립된 정책이나 시책이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과거에 수립한 정책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거나 전면 백지화하지 말고 심사숙고하여 점진적으로 수정하여 국론을 통합시킬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진 지도자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파 간에 대립과 갈등만을 일삼아 그 것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국가의 시책과 정책이 180도 달라지게 될 때 그동안 투자하였던 것은 다 수포로 돌아간다면 결국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결코 부자의 편에 서거나, 서민의 편에 서는 어느 한 편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와, 보수와 진보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부자가 서민을 돕게 하고, 서민이 노력하여 부자가 되어 또 다른 서민을 돕게 함으로 결국 부자와 서민이라는 계층 간의 벽을 허물어 화합하게 하는 좋은 지도자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때입니다.
2. 좋은 신하
유한한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혼자서 다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시너지 효과’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능력에 있어서 대동소이하고 오십 보가 백보이고 도토리 키 재기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그 사람 주변에 좋은 가족, 좋은 친구, 좋은 부하 즉 좋은 동역자들이 도움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흔히 인복(人福) 또는 인덕(人德)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받는 복중에 가장 좋은 복은 아마도 인복일 것입니다. 좋은 부모형제, 좋은 아내와 남편, 좋은 친구와 좋은 스승과 제자를 만나는 복이 바로 인복입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은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며 명석한 두뇌와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를 이용하려고 하고 까닭없이 시기하고 비난하며 모함하려는 사람 때문에 결국 주변사람의 실수와 허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결국은 오해와 비난과 불명예스러운 마지막을 맞는 사람을 가리켜 지질이도 인복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좋은 인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에디오피아까지 127도나 되는 광범위한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많은 신하들의 도움이 필요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도 두 종류의 신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 하만이라는 사람과 긍정적인 역할을 한 모르드개라는 사람입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충성하는 척 하면서 왕을 이용하여 자기 실리를 추구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과 달리 충성스럽게 아하수에로 왕을 받들어 페르시아 제국을 부강하게 하고 왕의 권세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그런 경우 견제를 하거나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고 때가 되면 사람을 교체하거나 마지막에는 모함을 하여 숙청하는 것이 독재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를 끝까지 신뢰하고 그가 유대인임을 잘알면서도 그를 차별하지 않고 페르시아 제국의 제 이인자가 되도록 자리를 높여 존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에 10:2)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기서 ‘높여’라는 말은 성장하다, 커지다, 강해지다‘라는 뜻으로 무명의 모르드개를 백성들에게 높임을 받도록 해준 아하수에로 왕의 배려를 뜻하는 말이며, ‘존귀케’라는 말은 모르드개를 왕 버금가도록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뜻입니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그같은 총애로 말미암아 존귀하게 되었고 더욱 왕에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 페르시아 제국은 더욱 더 부강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이 그처럼 약소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본인이 성실하기만 하면 제이인자도 될 수 있다는 모범적인 사례는 아무리 다민족 국가라고 할지라도 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게 하였고, 내부적인 결속을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외부적으로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거듭 참패하였을지라도 내부적인 결속과 경제부강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력에 흔들림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정책은 아하수에로 왕만이 아니라 다니엘이 섬긴 이방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 2: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단 5: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단 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1) 어떤 지도자는 사람을 자기가 높아지는 일에 발판으로 삼는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사람을 키우지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바꾸게 됩니다. 결국에 자신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2) 어떤 지도자는 사람을 키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키우고 일을 맡기고 잘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렇다면 좁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유능해도 출신 지역과 학교와 당과 계파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실력이 있고 유능해도 그와 같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기용하지 않습니다. 기용하였을지라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빌미로 그 사람을 불명예제대 시켜 인격적으로 매장을 해 버립니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소나무는 500년이나 키운 나무이어야만 합니다. 사람하나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키우지 않고 키워 논 사람을 껌 씹듯이 사용하고는 불명예제대 시키는 것이 다반사인 사회에서 누가 생명을 걸고 충성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끝없는 배신이 거듭되는 것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대의 걸림돌이 인물난인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 서로 물고 먹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은 무엇보다 좋은 인재를 키우는 사회와 국가와 교회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3. 좋은 백성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잘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잘하는 점을 보고 말하면 칭찬이 되는 것이고 잘못하는 것을 보고 말하면 비난이 되는 것입니다.
칭찬은 사람을 살리고 용기를 갖게 하고 격려를 하기 때문에 힘이 됩니다. 그러나 비난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좌절하게 만들고 힘이 빠지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기도 단점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평할 때는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살아있는 사람을 좋게 여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숨이 끊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아쉬워하고 칭찬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들처럼 사람을 과장하지도 않고 폄하하지도 않고 객관성을 가지고 공정하고 진실하게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칭찬은 힘이 나게 하고 성경의 책망은 사람을 회개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맥락을 이미 아하수에로 왕에 대한 평가에서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르드개에 대한 평가입니다.
모르드개가 유다 백성의 포로로서 불행하게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수산궁 대궐문을 지키며 하만에게 미움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고 통곡하며 기도할 때 누가 모르드개를 복받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였을 때 인간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들은 모르드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였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존귀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변함없는 믿음과 기도로 모르드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인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아 제이인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동족 유다 백성들에게 끝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에게 높임을 받을수록 자기 분수를 알고 더욱 겸손함으로 인해 왕은 물론 백성들에게까지 사랑을 받는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여기서 ‘존경을 받고’라는 말은 ‘위대한, 큰’ 이라는 뜻으로 동족 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말입니다. 또 ‘사랑을 받고’ 라는 말은 백성들에게 ‘기쁨과 호의의 대상’이 되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잘못하였기 때문에 비난과 책망을 받을 때도 있지만 잘못된 편견과 오해로 인해 비난과 정죄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마땅한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억울한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경우 얼마든지 동족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처신을 하였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만에게 무릎 꿇어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아이에서 어른까지 무차별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한 사람도 모르드개를 원망하지 않았고 모르드개와 신앙만이 아니라 생사를 같이 하였을 때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은 오히려 존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러한 모르드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크게 존경하였고,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드개는 백성들에게 존경만 받고 자만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그 처럼 사랑하는 동족을 더욱 행복하고, 즐겁고, 번영하고, 유익되게 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와 백성이 서로 하나가 되어 세워주고 사랑하는 민족이 되었다는 점이 모르드개와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그 같은 축복을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후일에 유다 백성들이 힘을 길러 예루살렘으로 대거 귀환하여 허물어진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여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스 9:9,10]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오늘 우리 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도자의 빈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는 지도자 자신의 문제입니다. 좋은 인맥이나 뛰어난 실력으로 막상 지도자가 되었으나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격적인 자질과 덕성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행에 있어서 실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양편을 어울러 하나가 되게 하는 중용보다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어느 한 편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항상 적을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예수님의 리더십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통합형의 리더십이었습니다.
2) 또 하나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뽑는 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들의 손으로 뽑았으면 세워주고 존경하고 협력하기 보다는 자기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지도자를 보는 시각이 자기중심적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존경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만 무성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국민의 여론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 사회는 좋은 나라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그가 재임하거나,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평가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는 정치 설교가 아닙니다. 나라 없이 가정과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교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백성입니다. 나라가 부강하지 않으면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할 수도 후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좋은 나라 좋은 교회는 좋은 지도자만이 아니라 좋은 백성들이 더불어 사는 나라입니다. 좋은 나라, 좋은 교회는 어떤 특별한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를 키우고, 존경하고, 기뻐하는 나라와 교회입니다.
좋은 나라는 좋은 지도자가 있는 나라입니다.좋은 지도자는 백성들이 세우고 존경하는 나라입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대학이 없고, 노벨상 감이 나오지 않고, 세계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인물은 누가 키워야 할까요? 자기 나라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는 대학을 왜 세계가 인정을 하고, 자기나라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는 인물을 왜 세계가 인정합니까?
세계적인 인물은 세계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키워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오바마가 위대하기 때문일까요? 그에게는 흠이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민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미국민이 편견을 버리고 오바마의 비전을 공감하며 그의 약점을 끌어 안고 적극적인 지지를 하였기 때문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 세계적인 대통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 시대 미국을 보십시오. 클린턴이 문제가 많았고 부시가 얼마나 많은 실정을 하였어도 탄핵하지 않았고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았고 신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역대 대통령이 결코 클린턴이나 부시나 오바마보다 못한 인물들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누가 나보다 잘하는 것을 보거든 시기하고 나보다 유능한 사람을 짓밟고 내가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세상에 나보다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나라가 좋은 나라요, 좋은 교회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존경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깎아내리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붙잡고 계시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어 세계 선교의 주자가 되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시기 위함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선교 정책을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약한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를 통해서 이루심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필코 우리 나라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남북은 대치가 아니라 화합을 하여야 하고, 분쟁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야 하고, 여와 야와 진보와 보수와 좌와 우는 국익을 위해 서로 인정을 하고 이해를 하고 필요할 때는 협력을 하면서 공존하여야 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때문에 자동차가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며 안전 운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라의 번영을 발목 잡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라 좋은 교회가 되게 하는 일에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얼마든지 좋은 지도자, 세계적인 인물이 우리나라에서도 태어나게 되고 좋은 나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의식이 거듭나야 하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질이 바뀌어서 지도자를 존경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세울 줄 아는 좋은 백성 좋은 성도가 되어야 좋은 나라 좋은 교회가 되어질 수 있는 좋은 지도자, 좋은 동역자, 좋은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대한민국을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눅 10: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설 교 > 이규왕목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소원, 우리의 소원(엡 1:17-19) (0) | 2009.06.22 |
---|---|
신령한 복을 받은 성도(엡 1:3-7) (0) | 2009.06.14 |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믿음의 가족(딤전 5:7-8) (0) | 2009.06.04 |
이상적인 부부(벧전 3:1-7) (0) | 2009.05.24 |
마음까지 씻어주는 교사(요 13:12-14) (0) | 200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