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상/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때

세속적 실용주의에 빠져 망국의 원흉이 된오만한 지도자/ 바벨론의벨사살왕

미션(cmc) 2009. 8. 8. 13:35

[바벨론의 벨사살 왕]

   
갈대아 왕조가 세운 신 바벨론 제국의 다섯 번째 왕이 나보니더스이다. 벨사살 왕은 그의 아들이었다. 다니엘서에서 벨사살 왕을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또는 그 부친이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단 5:2, 18, 22) 벨사살 왕이 느부갓네살 왕의 직계자손이며 그 직계 조상이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 바벨론 제국은 초대 왕 나보폴라살(재위 BC 626-605)과 두 번째 왕 느부갓네살(재위 BC 605-562)이 장기집권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다만 서남방의 아라비아 미개인들이 다소 골칫거리였을 뿐이다. 그래서 다섯 번째 황제 나보니더스가 서남 전선 데마 지방으로(욥 6:19, 사 21:14, 렘 25:23) 장기간 원정에 나서면서 그의 아들 벨사살을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신 바벨론 제국 전체를 통치하는 황제 아래 필요에 따라 내치를 책임지는 왕이 있었고, 그 아래 다수의 총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니엘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 싶다(단 5:29, 6:2). 벨사살 왕은 총리에게 전권을 준 뒤 자신은 매일 연회만 즐겼다(단 5:1, 7, 29). 제국은 서서히 기울어갔다.

잔치 자리에 갑자기 이상한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더니 회칠한 벽에다 고대문자를 새겼다. 이적이었다. 벨사살 왕은 덜덜 떨었다. 궁내 박사들과 학자들을 소집하였으나 아무도 해석할 자 없었다(단 5:8). 느부갓네살 왕 때의 대 현자 다니엘을 불렀다. 다니엘은 이적이 나타난 이유부터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자기의 뜻대로 국왕을 세우심을 알지 못한 채 벨사살 왕이 우상을 섬기며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으로 잔치자리의 술그릇을 삼는 만용도 서슴지 않았으므로 이 같은 하나님의 판결이 나타났다”(단 5:21-24 내용요약)는 것이다. 다니엘은 글자의 뜻도 해석했다. “이 나라가 언제까지 존속할지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는데 이미 만기가 되었다(메네메네)”는 것과 “왕의 자질이 부족하므로 나라를 나누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데겔우바르신)”는 것이었다.

왜 이런 이적이 나타났을까? 만약 벨사살 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왕이었다면 구태여 이런 이적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이성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질서를 지키고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을 먼저 사용하시지 이처럼 초자연적이고도 초이성적인 방법을 즐겨 사용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벨사살 왕이 마치 어리석은 부자(눅 12:19-21)처럼 하나님을 아는 이성과 인식이 전무하여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의 하나로 치부하였으므로(단 5:11, 14,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 다니엘”)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주권과 통치권을 행사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벨사살 왕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다니엘을 높여줌으로써 액운을 피해보고자 할 뿐이었다. 다니엘을 일종의 무당으로 본 것이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철저히 기복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도구주의적이었다. 이런 벨사살 왕의 모습은 인본주의적 실용주의에 깊이 물든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벨사살 왕이 유대인 다니엘을 총리로 삼았지만(단 5:7, 29, 나라의 셋째 치리자) 이것으로 자신의 구원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샤머니즘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벨사살 왕의 갈대아 왕조는 동북쪽 메대와 동남쪽의 바사 두 나라의 기습을 받아 어처구니없이 망하였다(단 5:30-31). 서남 전선에 출전하였던 부왕 나보니더스가 손쓸 사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