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령 충만한 부부/(엡 5:21-25)

미션(cmc) 2009. 10. 2. 06:34

성령 충만한 부부

(엡 5:21-25)

(엡 5:21-25)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람이 마치 술에 취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를 통제하지 못하고 술에 지배를 받아  평소와 전혀 다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에 취하게 되면 성령의 통제를 받아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삶과 더불어,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복종해야 할 사람에게 마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복종하고 사랑하는 균형 잡힌 삶을 살라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21)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서 ‘복종’이라는 말은 ‘무엇 아래’라는 말과 ‘줄을 서서 정렬하다’는 두 말이 합쳐진 말로 자기를 상위가 아니라 하위에 두라는 명령형의 말씀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고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말입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의 진면목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항상 자신을 낮추는 사람임을 뜻합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복종해야 할까요? 오늘은 그 중에 첫 번째 시간으로 성령 충만한 아내와 남편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 중에 먼저 성령 충만한 아내는 그리스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성령 충만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새로운 질서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가정을 통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고 하시는 것입니다.

 

1. 성령 충만한 아내의 책임과 의무
 가정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이루게 하기 위해 아담과 하와를 짝 지어 가정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신성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반드시 일정한 법칙과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를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유지되고 발전되어 갑니다.
 하나님이 창설하신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질서와 법칙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정에 제정하신 질서 중에 하나가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삼으시고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지으신 일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돕는 배필이란?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못해서 남자를 머리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둘 다 동일한 인격체이지만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신 후에 여자를 지으신 순서의 차이요, 역할의 차이일 뿐입니다.
(고전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성령 충만한 아내들은 이 같은 성경의 원리를 따라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남자가 강하지만 여자가 없이는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으며 모든 남자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 어머니가 여자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상호 보완의 관계로 남자가 아무리 유능 할지라도 어머니와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적인 삶을 살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남자를 가정의 머리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마땅히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창조의 질서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성경적인 원리인 것입니다.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물론 이 말씀은 요즘 남녀평등과 여권 신장을 부르짖는 것과 비교할 때 불공평하게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당시 남녀평등이란 꿈같은 이야기로 가부장 중심의 일부다처주의가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시대에 여자는 재산과 노동력과 성적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여자를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존재로 보았고 로마인들도 여자들은 본래 열등한 존래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 같은 가치관에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지상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의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교회의 머리라고 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는 머리가 없는 몸은 존재할 수 없으며, 몸이 없는 머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머리와 몸이 연합하여 온전한 생명체를 이루지만 몸은 머리의 지배를 받을 때 온전해지는 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물론 머리와 몸과의 관계는 긴장이나 갈등이나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몸이 머리의 지시에 순종하는 관계일 때 가장 건강한 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된 교회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가장 건강하고 평안한 교회가 되는 것이 영적인 질서입니다. 그 때 몸된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긴장과 대립이 아니라 자발적인 복종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기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최초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시기 위해 최소 기본 단위인 가정을 주신 것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연합하여 이루어지는 가정의 질서와 행복은 가정의 머리로 세우신 남편에게 아내가 복종할 때 진정한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가정의 질서입니다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여기서 ‘머리’라는 말은 근원이요, 기원이라는 뜻으로 여자는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에서 취하여 만드셨기 때문에 여자의 근원은 남자인 것이며, 그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라 마땅한 일이요, 미덕인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몸된 교회와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함을 깨닫고 지금까지 남편을 무시하며 살아온 아내는 이제 마음을 바꾸어 주께 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항상 뒷바퀴는 앞바퀴와 방향을 같이 하고 뒤따라 굴러갈 때 가장 빠르고 안전할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한 가정은 성령 충만한 아내가 남편을 뒤따르는 복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엡 5: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기서 복종은 물리적이고, 강압적이고, 수동적인 복종이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아내가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마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로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복종하는 자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복종은 당시 흔히 있는 제도적이고 노예적인 복종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여자는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복종을 요구하셨는지를 깨닫고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드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율법적인 시대와 다른 새로운 질서로 성령 충만한 시대상인 것입니다.

 

 2. 성령 충만한 남편의 책임과 의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공평무사하신 하나님으로 편견을 가지고 계신 불합리한 분이 아님을 창조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에서 얼마든지 몰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이 결코 일방적으로 여자의 책임과 의무만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에게도 여자 못지않은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오늘 성경 본문에 잇따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아내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마치 친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필레오적인 사랑이었으나 오늘 성경에서 성령 충만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심으로 사랑을 입증하신 아가페 사랑과 동일한 마음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술에 취한 다수의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여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술 취하지 않고 성령 충만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과 동일한 심정으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명령이라는 말은 선택이 아니라 마치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남편들이 성경 말씀에 절대 복종헤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내에게만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자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아가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복종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성경의 주제인 복종은 결코 여자에게만 국한된 편견이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공정성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아내의 책임과 의무가 한 마디로 ‘복종’이라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책임과 의무는 한 마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든 일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복종이 아니라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은 결코 여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남성중심의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하라는 평등한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다섯 가지의 동사입니다. 신랑되신 예수께서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되 말만의 사랑이 아니라
 1)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으며
 2) 교회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고
 3)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4)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고
 5) 교회를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요구하시는 아내의 사랑의 기준이 바로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어느 누가 아내를 그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기독교가 얼마나 가정적인 종교인가 하는 것을 능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신약 성경에서만 아니라 구약 여러 곳에도 동일한 맥락으로 강조되고 있음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 5:18,19)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전 9: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물론 보기도 듣기도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자들이 그 말씀처럼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사랑을 완성하신 이유가 진정한 아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모델을 제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같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깨달음과 더불어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을 증거하는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제일 첫 열매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성령 충만한 남편의 아내 사랑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타락한 인간의 의지로는 그것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설령 그것을 지키지 못해도 사람들이 잘 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기준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세상에서 아무리 몰인정하고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고 학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나 지나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아내는 하와가 아담의 분신인 것처럼 아내는 남편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창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편이 자기 아내를 자신처럼 생각하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아주 지혜로운 것이며 자신에게 유익이지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은 인간이 세운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신성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손들이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시고,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시며, 자손 대대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남편들의 잘못된 권위의식이 관행이 되어왔습니다. 정반대로 남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정의 머리로서의 권위가 무시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뿌리부터 썩어가는 나무처럼 가정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불화와 그로 인해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자기가 어려서 부모들에게서 경험한 죄를 반복하면서 마치 신종플루처럼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점차 기성세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점차 젊은 세대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몰라가고 있습니다. 점차 부부간의 갈등과 반목과 이혼율이 높아가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수 많은 청소년들이 울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와 같은 가정들을 치료하고 회복해야만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부부들부터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에서부터 자라는 청소년들이 꽃처럼 아름답게 자라미래의 하나님 일꾼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누가 그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이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도우심으로 병든 가정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1) 그 비결은 성령 충만한 아내가 되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삼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남편을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그 비결은 성령 충만한 남편이 되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에게 부담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 말고 나의 분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경적 원리는 결코 어느 한 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편견이 아닙니다. 부부가 동등한 인격체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동등한 책임과 의무입니다. 아내로서의  복종과 남편으로서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고 전가하는 규정이 아니라,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규정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복종과 사랑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는 성령 충만한 아내와 남편이 될 때만이 가정이 회복되고 그 자손들이 부모에게서 위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아래로 부부간의 사랑을 본받아 대물림하는 행복한 자손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