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드리는 선물
(신 16:12-17)
(신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신 16: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신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물론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켜 온 성도들은 대부분이 다 잘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추수감사절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일반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 차원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특별한 의미를 자주 잊어버리고 살기 떄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의미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살게 하기 위해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특별한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고 마음 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거룩한 이스라엘 민족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성경적인 유래는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출애굽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하신 것이 있는데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시겠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가나안을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창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가서 살든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으며, 가나안 땅은 기후나 토질과 상관없이 거룩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이스라엘 백성을 성민이라고 하고, 가나안 땅을 성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나안 땅 가운데 예루살렘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며,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종교적인 용어로 하나님은 세상 어떤 신과도 그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구별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의 예루살렘 땅을 당신의 소유로 따로 구별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거룩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느 11: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여 고통을 겪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애굽의 바로 왕에게 자그만 치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 일입니다. 그럴 때 과연 세상에 어느 누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도리어 비웃고 조롱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다못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얼마나 위대한 신인가를 증명하여 보이셨습니다.
(출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물론 애굽의 바로 왕도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자기가 믿는 신들의 무당들을 불러다가 맞대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지방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바로 왕과 애굽 백성들은 하루 밤 사이에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허락하였습니다.
(출 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 12: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유월절을 자손 대대로 명절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정착하였을 때 그의 자손들이 유월절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그것을 가르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 12: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출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 사십 년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거룩한 땅이 아니라 온갖 우상으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사백 삼십년 동안 애굽에서 우상을 경험하였고 이제 가나안 땅에서 다시 우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가나안 땅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하기 위해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된 종교와 문화를 누리게 하심으로 이방인들과 차별화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기업이 되게 하시려고 거룩하게 구별한 가나안 땅은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음란하게 섬김으로 가나안 땅은 더럽혀 질대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레 18:24)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 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레 18:27)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거룩한 땅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으로 구별받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게 하시고 우상을 척결하게 하시고 그 땅에 거룩한 성전을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전 민족적으로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타락한 우상문화에 찌든 가나안 땅을 정화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하고 성결한 규례를 가르침. 일 년에 세 차례씩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절기를 성실하게 준수함으로 그 절기에 깃든 신령한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고 모든 수확물을 저장한 후에 그 모든 수확이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지키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풍요를 자만하지 말고 지난 날 어려웠던 시절 하나님의 돌보심을 감사하는 축제입니다. 자만하는 사람에게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 절기는 한 해 동안 모든 곡식의 수확을 마치고 드리는 기쁨의 절기로 일종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런 점에서 흔히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은 이 장막절을 지킴으로 출애굽 이후 죽음의 땅 광야에서도 생명을 지켜 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한 편 이 초막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될 기쁨과 평안의 생활을 예표하는 매우 소망적인 절기입니다.
2. 감사의 차별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가운데 감사에 있어서도 차별화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방사람들은 바알 신이나 아세라 신을 자기들의 손으로 만들어 놓고 그 신을 기쁘게 하겠다고 그 앞에서 창녀들과 음행을 하며,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쉽게 바알을 숭배로 전향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되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일년 농사를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되 우상을 숭배라는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를 하게 하신 것이 바로 오늘 성경의 말씀입니다.
1) 구원을 감사
성경이 가르치는 추수감사절은 농사를 짓는 농부들만 감사하는 명절이 아니라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체적으로 감사하는 민족적인 명절이었습니다.
(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물론 오늘이나 그 당시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민족이 다 하나님께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시지 않았다면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 하나는 농사를 지어 소득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농사여부를 막론하고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전 민족적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신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바로 이 점이 육신의 것을 추수한 것만을 감사하여 우상앞에 제사하는 가나안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인 것입니다.
2) 더불어 감사
예나 지금이나 흔히 사람들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수입이 더 많고 지위가 더 높고 하는 일이 형통할 때만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나보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복을 주어 잘살게 하며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 만사는 무슨 공산품처럼 획일화될 수 없고 사람마다 개인의 재능과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처지가 제 각기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할지라도 다 잘살고 다 만사형통할 수 없으며 그 가운데는 가난하고 소득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바로 노비와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추수를 한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불어 초막절을 지킬 때 가나안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인 것입니다.
(신 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3) 믿음의 감사
가나안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는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복과 은혜에 따라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만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없이 복과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신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감사는 소출만이 아니라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신 복’에 대한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소출을 얻은 농부만이 아니라 무엇을 해서 소득을 얻었든지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4) 힘대로 감사
일년 농사를 다 마치고 거둔 결실이 비록 넉넉하지 못할지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주신 것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주신 복을 따라서 공평하게 힘을 다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신 16: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신 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여기서 ‘빈손’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헛되다는 뜻이며, ‘그 힘대로’라는 말은 능력이나 힘을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는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헛되고 공허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공평하거나 차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게 적은 것을 주셨거나 주시지 않은 것이 있는 반면에 내게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것을 주셨음을 깨달을 때 최선을 다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드릴지니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무슨 세금을 내는 것처럼 억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는 선물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로 드리는 것이 추수감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구별하신 거룩한 땅에 들어가서 이 같은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종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기복적이고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바알 신에게 음란하게 드리던 제사와 차별화된 제사요 차별화된 감사라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의 감사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불신자나 우상 숭배자들이 드리는 제사와 무엇이 차별화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간혹 생일이나 기념일이나 명절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선물을 주고받음으로 사랑을 서로 나눔으로 기쁨을 배가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날 추수 감사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죽은 조상들에게 추석 제사를 드림으로 감사를 하여 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그러한 감사와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우리의 감사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의 감사는 똑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점이 달라야 할까요?
1)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물질의 많고 적음과 지위의 높고 낮음과 건강의 강약에 의해 좌우되는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만이 얻어지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적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비록 적어도 약해도 없어도 잊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지만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 속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고 많아지고 높아질 때에만 감사하는 상대적인 감사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에 대한 반응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의 생명을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주인이시며, 관리자이십니다. 우리의 잃어버렸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죽을 생명을 살려 주셨음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복중에 가장 큰 복은 출애굽보다 더 좋은 구원의 복입니다. 더나아가서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 회복을 말합니다
감사의 가장 확실한 표현은 하나님 아버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불평하는 것입니다.
헬렌켈러는 "영혼을 소유했으니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하고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일시적 현세적인 일로만 감사하기보다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신 하나님께 더욱 깊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성숙한 믿음의 증표
감사는 풍요로울 때만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의 증표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례를 말하면 어김없이 미국의 조상 청교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어달려 부르짖어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다시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라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 땅과 같은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추수감사는 소득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무엇보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아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 성숙한 감사입니다.
간혹 우리 중에 나는 가난해서 나는 건강하지 못해서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청교도들이 적은 소득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드린 전천후의 감사정신을 우리도 본받는 다면 우리도 가나안 땅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기복적인 제사를 드리는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하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눈을 뜨는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몇 시간이고 보면서 그의 모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둘째 날에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들로 나가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과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가 어느덧 저녁이 되면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 싸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 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 삼일이 아니라 매일 매일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차별화된 감사는 소유나 환경에 두면 안 됩니다. 소유적인 감사 상대적인 감사는 오래가지 못함은 그 자체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 속담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뇌물도 세금도 아닌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치 씨를 땅에다 심는 것처럼 무엇을 심든지 ,얼마를 심든지, 심는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믿음대로 감사할 일이 많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청교도들이 적은 소득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드린 전천후의 감사정신을 우리도 본받는 다면 우리도 가나안 땅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기복적인 제사를 드리는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된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비록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비록 한 해 동안 수입이 넉넉하지 못했어도 이미 내게 주신 신앙의 자유와, 육신의 건강이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줄 깨닫고 하나님께 선물을 드리는 마음으로 힘껏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감사할 일이 많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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