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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5단계구조]7. 로마에서 낙원으로(1)

미션(cmc) 2009. 12. 31. 15:36

[성경의 5단계구조]
7. 로마에서 낙원으로(1)

1. 로마시대 유대의 사회적 종교적 환경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다릴 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과 안나라
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의 위로와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에서 새로운 나라와 성전이 세워질 것을 꿈꾸며 돌
아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돌아왔을 때 현실은 냉혹했으며 더 이상 과거의 영광
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무너진 포로기에 그들은 또다른 삶의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지금까
지의 동물제사가 아닌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을 깊이 연구하며 처절한 고난 속에서 깊은 회개의 심정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회당이 마을마다 세워지며 여기서 말씀을 연구하는 랍비들
이 생겼습니다. 마침내 회당이 점점 늘어나 성전을 대치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연구하는 서기관 그룹이 지도자층으로 떠올
랐고 말씀을 잘 연구하는 유명한 랍비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말씀보다 랍비들이 해석한 전승이 더 권위있게 여겨졌
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성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 것입니다. 서기관들에 
의한 해석체계는 6천명 정도 되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철저히 삶으로 구현됐습니
다. 그러나 회당에서 가르쳐지는 그 많은 세칙과 규례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너
무나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외적인 규례와 삶의 규칙은 철저했지만 내
적인 생명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에 짓밟혔습니다. 그 후에는 헬라 문명이 이스
라엘을 휩쓸었습니다. 여기에 항거해서 마카비가 일어나 혁명을 일으켜 130년 
동안 독립을 쟁취햇지만 어느새 강대국 로마가 예루살렘을 짓밟고 들어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로마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민족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회당에서 말씀을 붙
들었습니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구별시켜 가며 뭉친 결과 종통 유
대주의가 형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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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바벨론에서 나온 400여년 동안 열심히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엄격
하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의 그 기간 동안은 불행하게도 선
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의 종이 된 것은 강대국 로마의 속국이 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의 환경은 이런 율법주의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빠뜨려 죽이는 무서운 늪과 같았습니다.
다니엘이 살았던 시기에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거대한 
금신상의 머리는 바벨론을 나타내고 가슴과 팔은 메데와 바사를 의미하며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세력이 총화로 뭉쳐져서 무서운 세력
으로 등장한 발은 로마시대였습니다. 겉으로 볼 때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그 실
상은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형상이었습니다. 결국 그 당시 모든 세속적 제국들은 
한 통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에 애굽의 종살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
아 우르에서 헤어나올 길 없는 문명에 압도당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율법주
의의 종이 되어 영적죽음의 자리에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
시 세력중 가장 무서운 로마의 속국으로 종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끝없는 시련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절망을 헤치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것이 바리새주의였습니다. 사두개파는 전
승을 붙드는 바리새인들을 비웃으며 모세오경을 붙들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
던 이들은 헤롯당은 결성하고 로마에 아첨하는 쾌락주의자, 현실주의자로 살았습
니다. 그러다가 A.D.70년, 디도장군에 의해 성전이 무너질 시기에 흔적도 없
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담나 회당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주의만 명맥을 이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은 바리새주의가 정통입
니다.
그 때 또 한 부류는 세상을 피해 사막으로 들어가서 에세네파가 됐습니다. 거
기서 정결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몸부림을 표현합니다. 이들은 반란을 획책하고 
끝없는 소란을 일으키는 근원지가 되었습니다.
2. 궁극적인 구속과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눅2:25,38)
민족사의 아픔을 겪어 본 이후에도 절망하지 않고 율법주의로 전락하지도 않으며 
성령의 감동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세칙들에 파묻히지 않
고 성령이 해석해 주시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율법주
의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종노릇하고 있거나 증오심과 좌절에 빠져 있는 상황
에서 예루살렘의 시므온은 성령의 다스림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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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싹이었습니다. 환경과 시대의 분위기에 영향 받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자신의 존재를 여는 놀라운 몇사람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
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언제나 남겨 두십니다. 성령만이 참된 실상을 보여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여 알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
다. 성령은 진정한 구원의 빛을 보게 합니다.
시므온은 율법주의적인 경건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신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자신
의 전 인격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이 살아 약동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깨어 있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이 실현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전인격을 다해 깨어 있는 이 한사람에게 메시야를 만나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3. 전(全)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열망 
  - “예수의 출애굽(Exodus)" (눅9:31)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군사적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감동하시는 가운데 성경을 보면 고난 받는 메시야를 볼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시므온이 본 한 아기는 군사적 메시야가 아닌 무력한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 아기는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온 이방의 빛이라는 
사실을 생생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세계입니다.
드디어 그분이 오신 것입니다. 다 깨지고 무너진 절망의 자리, 진실한 기다림
의 자리에 한 아기는 정확하게 안기워졌습니다.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미 역사는 
뒤집히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주님은 정
확하게 만나주실 것입니다.
구속과 위로는 출애굽과 바벨론에서 나온 선지자의 용어입니다. 애굽에서 벗어날 
때 처음으로 ‘구속’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출애굽은 여호와의 구속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의 또 한번의 출애굽을 ‘위로’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 구속과 위
로를 로마의 압제하에서 다시 한 번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의 패러다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구원의 행위는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계를 보고 누리며 통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인 출애굽입니다. 이제는 어떤 민족의 출애굽
이 아니라 죄의 깊이로부터 자유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참 하나님나라 
백성을 만들기 위해 출애굽을 일으키시려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은 앞서 이스라
엘이 역사 속에서 경험했던 출애굽의 완성이며 인류에게 주려는 가장 심오한 선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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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했던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다른 
얘기하지 않고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언급했습니다. 별세라
는 단어가 원문에는 ‘엑소더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무서운 종살이
로부터 모든 인류의 궁극적인 출애굽을 이루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
자들은 이 궁극적인 출애굽을 열망했습니다.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며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진정한 백성이 창조되기를 고대했습니다.
4. 드디어 다시 열린 낙원(Paradise)의 문(눅23:43.45)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경외하며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의 간구일 것입니다. 
주님은 전 구약성경의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로마에서 낙원으로 우리를 
이끌러 가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서 궁극적
인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낙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룹들이 화염검을 가지고 지켰던 그 동편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룹이 있는 휘장
의 문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 버립으로 낙원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나라를 여시고 진정한 자유함을 주십니다. 흙에서 에덴으로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은 구속이라는 재창조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열망은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들이 모인 교회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열망이며 주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하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생명을 
거셨습니다. 주님의 이 수고하신 길에 들어서십시오. 우리가 자유케 되어 왕같
은 제사장으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 갈 때 온 구속사와 전 인류역사
의 중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 박주형 visionsp@onnuri.or.kr>
* 출처:온누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