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 1:8-11)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신앙과 삶의 지침서가 되는 신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은혜가 되는 성경 구절을 꼽아보라고 하면 대부분 요 3:16이나 시 1편 1을 손꼽을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고 배워 우리도 사랑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으며, 과거 예수를 믿기 전과 믿고 난 이 후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1:14) 전에는 몰라서 하고 싶은 대로 악한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로서 예전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전에는 미움과 시기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로 영적 신분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엡 5:8) 이전에는 여러분도 어둠 가운데 있었으나,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빛에 속한 자녀답게 사십시오.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변화를 받아야 함은 인간관계에서도 변화가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와 상처를 주는 무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변화를 받아야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위로와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러한 변화의 증거는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기도하였으나 이제는 이웃을 사랑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이웃 사랑의 기도가 있어야만 사랑의 실천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의 변화
세상에서 오래된 관습이나, 전통이나, 헌법을 바꾸는 일도 어렵지만 그 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변화를 받아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흠뻑 젖은 사람으로 그의 편지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바울이 전에는 누구보다 몰인정하고 무자비하였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절절하게 체험을 하고나서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변화를 받기 전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열성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여기서 ‘살기’라는 말은 죽이다는 말(fevnw)에서 온 ‘살인, 살해’라는 말로 마치 요즘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박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같은 사울에게 가혹한 징계와 형벌을 통해서 당신의 살아 계심과 교회에 대한 사랑을 증거 하실 수 있으셨으나, 오래 참으시는 사랑으로 사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핍박하는 사울에게 용서를 넘어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진노와 저주대신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쓰셨습니다.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무리 강퍅한 사울이라고 할지라도 그 같이 자기를 찾아주시고, 만나주시고,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사도로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11: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그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바울은 이전에 그렇게도 핍박하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머리나 입술에서 나온 싸구려 사랑이 아니라, 자기가 체험한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에서 나온 고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오네시모를 감옥에서 만나 복음을 전하되 말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전함으로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 새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몬 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몬 1: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몬 1: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여기서 ‘심복’이라는 말은 본래는 ‘감정의 자리인 심장 또는 마음’을 뜻하는 말로 ‘친절과 자비와 사랑을 표현하는 말로 ’극진히 사랑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되 입술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네시모를 ‘심복’이라고 했던 그 단어가 또 다시 언급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여기서 ‘심장’이라는 말이 바로 오네시모를 ‘심복’이라고 했던 말과 똑같은 단어로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입술이나 머리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그와 같은 사랑을 입증할 길이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을 감히 증인으로 채택을 할 정도였습니다.
2. 사도 바울의 기도
어느 종교를 믿든지 나름대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하는 사도 바울의 기도와 같은 기도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한 것은 머리나 입술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달려 로마 병정의 창끝에 심장이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세 가지를 기도하였습니다.
1.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사랑을 잃은 현대 교회는 마치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변질되어 세인들의 비난과 질타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대형화되고 선진화 되는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회복하는데 있음을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을 잃은 교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 사랑은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위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하고, 아래로는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살후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넘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사랑하거나, 돈을 사랑하거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 진리에 대한 지식과 성령이 주시는 총명으로 통제와 절제가 동반된 사랑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남을 더욱 더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지식과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빌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왜 그와 같은 사랑의 기도가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말세가 될수록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세상의 사랑이 더더욱 식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특별히 세상의 사랑은 식어도 교회만은 사랑이 식지 말아야 하는 사랑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안에서조차 그와 같은 말세의 징조가 확연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이 점점 풍성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날까지 허물이 없기를 기도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사모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기도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선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춤으로 어느 누구로부터도 비난받을 일이 없는 정결한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여기서 ‘지극히 선한 것’ 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탁월한 것인가를 분별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물론 선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을 시도해본 사람들은 자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할 수 록 그것이 내 힘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내 의지로는 한 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죽음이 오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흠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는 부귀권세를 누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소원이지만 점차 나이를 먹게 되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흠 없이 깨끗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인가를 깨닫고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물론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흠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도 점차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변질되어가게 됩니다.
(겔 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당신의 영광에 대한 도전입니다. 사단은 타락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게 합니다. 그 상급은 비참함이며 멸시와 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를 위해 나를 비우며 사는 삶입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풍성히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농부가 땀을 흘리면서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열매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농부가 바로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생존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열매를 위함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통해서 거두기를 원하시는 의의 열매입니다.
1) (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화평하게 사는 삶이 의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2)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선행과 의로운 삶이 빛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3) (갈 5: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라고 하신 말씀처럼 아홉 가지가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라도 우리가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세인들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어 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맺을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에 날마다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로 지금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1) 바울이 감옥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것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빌립보 교회를 가슴에 품고 사모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교회와 성도들이 복을 받기를 기도하는 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라면,
2) 감옥에 수감되어 고난 받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돕는 일에 동참하고,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위로의 사절을 보내어 수발들게 하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사랑의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라면,
그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이 영혼을 맡겨도 좋을 이상적인 교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보여주는 모델 하우스가 아닐까요?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당신의 심장을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교회의 제일 높은 첨탑이나 강단 중앙에 높이 걸고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교회의 본질인 사랑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오늘 성경에서 보여주는 바울과 빌립보 교회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현대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또한 마땅히 사랑해야 할 가족과 교우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칭찬할 것이 많은 에베소 교회가 오직 하나 처음 사랑을 잃었다고 해서 그 교회를 멸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사랑은 교회의 본질이요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계 2:2) 나는 네가 선한 일을 많이 한 것을 알고 있다.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인내해 온 것도 보았다. 또 네가 믿음의 형제인 척하며 죄짓는 자들을 눈감아 주지 않고, 사도라고 스스로 떠들어대는 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 그들이 가짜인 것을 가려낸 사실도 알고 있다. (계 2:3) 너는 나를 위해 고난을 견디었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계 2:4) 그러나 너를 나무랄 일이 하나 있다. 네가 나를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계 2:5) 네가 처음으로 나를 사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라. 그래서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찾아 깊이 뉘우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힘써 노력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릴 것이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많은 교인들이 모여 아름다운 찬양을 부르고 듣기 좋은 설교, 열정적인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교회는 힘을 잃게 됩니다.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어느 교회이든지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없고, 양들이 없는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기왕에 목사와 성도들이 있는 교회라면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을 가진 목회자와 빌립보교회처럼 목회자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목회자는 바울처럼 되려고, 성도들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되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상대방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힘써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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