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실패하고 동생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놋 땅에 거주하면서 그의 가문을 세운다. 그들은 온갖 문화를 만들어 갔다. 그런데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를 떠나서” 놋 땅으로 갔다(16절). 물리적 공간이 아닌 그의 마음에 여호와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인이 성을 쌓고 결혼 후 아들을 낳은 그는 가장 먼저 성을 쌓았다(17절). 이 성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지만 사실은 그 성에 갇힌 것이다. 가인이 쌓은 성은 두려움과 방어본능의 표현이다. 그는 동생을 죽였다. 남을 죽인 그는 다른 사람도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했다. 14절에서 자기를 죽이는 자가 있을 것을 걱정한 가인은 성을 쌓은 것이다. 방어본능이 이 성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줄 성이요, 요새요, 피할 바위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다 그 힘이 뛰어났고 든든한 요새를 만들어 자기를 지켰다. 하나님이 없는 함의 후손 중에 니므롯 같은 용사가 태어났고 그들은 큰 성읍을 세웠다(10장). 자기의 힘으로 펄펄 뛰던 야곱의 형 에서도 세일산 요새에 거하며 그 교만을 키웠다. 골리앗이 그런 힘의 상징이기도 했다. 성을 쌓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의 표현이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는 무력한 인생들의 모습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가인은 그 성을 아들의 이름 에녹으로 불렀다.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이 말하는 이름은 예배와 관련된다. 십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않는 것이 예배라고 한다. 가인의 후손과 대비되는 셋의 후손 에노스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가인의 후손과 달리 예배하는 자들이었음을 밝히는 것이다(26절).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예배를 의미한다(12:8). 다윗이 모욕당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회복하기위해 골리앗과 싸운 것 역시 예배를 중요하게 여긴 그의 평생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삼상17:45). 반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 사람의 이름을 내려고 한다. 11장에서 시날 평지에 모인 자들이 성읍과 탑을 높이 쌓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다는 것에 주목하라(11:4). 가인이 아들의 이름을 성에 붙인 것은 인간 스스로를 예배하는 자들의 전형이다. 자기 이름보다 아들의 이름이 나면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늘날의 모습을 이미 가인이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가르치셨다(마6:9). 요압이 정복한 랍바성에 자기 이름이 붙지 않도록 마지막 공격은 다윗왕이 하게 한 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삼상12:26~31). 세계 최대의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턴이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관행을 깨고 여왕의 이름을 붙인 것도 그렇다. ‘에녹성’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자기 방어와 인간 스스로를 예배하고자 하는 교만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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