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살았던 영국의 시인 존 단은 임종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생애 중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지 않거나 선을 행하지 않고 보내버린 내 잃어버린 삶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신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역사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존재하기만 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34살의 나이로 거대한 공룡과도 같았던 로마 가톨릭 세력에 맞서서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517년 당시 8살이었던 칼빈은 종교개혁자들의 용기를 가슴에 머금고 자라나 차세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적인 진보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명한 히브리 속담에 “훈계에 대한 보상은 훈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에 도달한 자는 그 다음 높은 진리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한 단계의 성장은 새로운 의무를 계시 받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더욱 많이 힘써야 합니다. “은혜를 위한 은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끊임없이 지향해야 할 신앙의 경로를 가르쳐 줍니다.
신앙의 길은 마치 멋진 건물로 향하는 아름다운 길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길고 어떤 곳은 위험한 절벽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혹 여행자들이 실수하여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그 길에는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이 울타리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악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도구로 드려야 합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와의 신비한 연합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주변의 성적 타락과 이교도의 부도덕하고 음란한 의식에 빈번히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도 바울은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을 좇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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