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삼상 22: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삼상 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가정의 달 5월 둘째 주 어버이 주일입니다. 세상에는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해 배우자가 없거나, 결혼을 한 후에도 자녀가 없는 부부는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부모가 없이 저 혼자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에 자식 사랑에 대해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어도,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 공경이라는 효도가 무너지게 되면 모든 윤리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녀 사랑, 부부 사랑, 이웃 사랑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이미 경고한 것처럼 말세가 되어갈수록 부모 공경이 식어져가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많은 가정들이 금이 가거나 깨어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딤후 3:1) 마지막 날에 많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딤후 3: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천여 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이러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 하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오늘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아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경의 주인공 다윗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전 일천여년 전(BC 1085 또는 1040)의 사람으로 이새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편 가운데 표제에 다윗의 이름이 기록된 것만도 73편에 기록이 될 정도로 영성이 풍부한 사람이고, 약소국 이스라엘을 강력한 왕국으로 건설한 장본인으로 가고 오는 역사 속에 모든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다윗에게도 파란 만장한 고난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목동을 하던 소년시절입니다.
1. 다윗의 목동시절
다윗은 이새의 가정에서 팔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 목동으로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울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매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만 저질렀기 때문에 결국 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가정에 보내어 아들 중에 하나를 왕으로 예선하게 하셨습니다.
이새는 여덟명의 아들 중에 일곱 명에게 사무엘 선지를 영접하게 하면서 무슨 연유인지 막내인 다윗은 제외를 시키고 들판에서 양을 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일곱 아들들 가운데 키가 크고 잘생긴 아들들은 택하지 못하게 하시고 구태여 들판에서 양을 치는 막내 다윗을 불러 오게 하셨습니다.
(삼상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여기서 ‘지키나이다’라는 말(h[;r;)은 ‘풀을 뜯기다, 먹이다, 사귀다, 친구가 되다’ 라는 뜻의 분사로 이는 평소에 다윗이 얼마나 양떼를 가족처럼 사랑하는가를 이새가 잘 알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양을 칠 때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가 나타나 양을 노략질하려고 할 때면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맹수와 싸워서 양을 지켰습니다.
(삼상 17: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후일에 다윗은 그와 같은 목동의 경험을 통해서 선한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지켜 주심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다윗을 왜 이새가 여덟 명의 아들 가운데 유독 다윗만을 제외시키고 양을 치게 하였는지 그 이유가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윗이 제일 어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은 그의 아버지 이새의 뜻도 아니고 사람의 외모를 보는 사무엘의 뜻도 아니고 오로지 중심을 보시는 하나이 다윗을 보시고 마음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렇다고 해서 다윗의 용모가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 아님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삼상 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은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를 다른 형들과 차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새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효자였습니다.
어느날 이새가 전쟁터에 가 있는 세 아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다윗을 불러 그 형들에게 볶은 곡식과 떡을 가져다주고 천부장에게 가서 그것을 확인하는 증표를 받아 오게 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 여덟 명 중에 세 아들만 징병을 당했다면 아직도 네 아들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이새는 막내 다윗에게 그와 같은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물론 그것은 상당 부피와 무게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되 아침 일찍이 서둘러 집을 나선 것을 보면 다윗의 효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상 17:20)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우리는 이같은 다윗의 모습에서 어떤 마음의 자세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새의 형들은 다윗이 힘들게 선물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 의분하였을 때 칭찬은 고사하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 댔습니다.
(삼상 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만일 오늘 우리가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오랜 세월을 두고 잊을 수 없는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그와 같은 상처로 인해 지금도 부모나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인처럼 느껴지는 고민을 품고 부모나 형제에 대해서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2. 다윗의 피난 시절
다윗이 통쾌하게 골리앗을 이긴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울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곁에 두고 그가 타는 수금 소리를 들으며 그를 괴롭히는 악귀를 물리치게 할 정도로 다윗을 신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너무 많아 자신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리 저리 다니게 되었습니다.
1)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 땅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제단에 진설된 거룩한 떡을 먹었습니다.
(삼상 21: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2) 다윗은 거기서서도 불안한 마음에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서 미친체 하며 침을 질질 흘리며 피신을 하려하였으나 역시 불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3) 다윗은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을 떠 자리를 옮긴 곳이 바로 오늘 성경에 아둘람 굴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다윗이 바로 여호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제 아무리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생사를 온전히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고 세상 권세를 의지하게 되면 다윗처럼 두려움과 비겁해짐에 빠질 수 밖에 없음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의 형제와 가족들이 다 그곳에 모여들었습니다.
(삼상 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의 가족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을 지지함으로 인해 사울에게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듣고 아둘람 굴로 모여들었습니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1) 여기서 ‘환난 당한’ 이라는 말(q/xm;)은 ‘억지로 시키다, 강요하다’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곤경, 곤난, 고통, 고민’이라는 뜻입니다.
2) 다음 ‘빚진 자’라는 말(av;n)은 ‘곤경, 곤란, 고통, 고민’ 사울의 정권에게 과도한 세금이나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마음이 원통한자’라는 말(rm)은 사울의 폭정하에서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다윗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아둘람 굴에 함께 피신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심지어 부담이 뫼면 부모도 버리는 패역한 세상이 아닙니까?
이제 다윗은 부모와 가족만이 아니라 마치 망명정부를 세운 사람처럼 자신을 지지학 따르는 피난민들의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과 부담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무려 사백여명에 이르게 되자 아둘람 굴은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함을 알고 사울 왕을 피하여 모압 지방의 미스베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3. 모압에서의 다윗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방 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모압으로 내려 간 이유는 모압이 다윗과는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룻기와 만나게 되는데 룻이 본래는 모압 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올라가서 보아스와 결혼을 하여 낳은 아들인 오벳이 다윗에게는 증조 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모압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의 고향인 셈입니다.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압 왕은 다윗을 선대하였고 다윗은 모압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리기로 작정을 하고 그의 부모를 모압으로 모시고 가서 모압 왕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삼상 22: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여기서 다윗이 모압 왕에게 청한 ‘나의 부모’는 수십 년 전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울 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더더욱 늙었을 것입니다.
(삼상 17: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이 같은 다윗의 모습은 마치 애굽에서 총리를 하는 요셉이 흉년을 만난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바로 왕에게 인도하여 애굽의 정착을 허락받던 모습과 흡사합니다.
(창 47:7-9)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
이제 성인이 되어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하여 망명자와 같은 생활을 하는 다윗에게 나이 많은 부모와 가족은 여간 짐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부모와 가족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이방 모압 지방 왕에게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부모의 안전을 구했다는 것은 다윗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삼상 22: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모압 왕은 부모를 공경하는 다윗을 귀하게 여기고 모압 왕은 다윗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므로 다윗만이 아니라 다윗의 온 가족과 일행도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피신을 하고 있는 처지에서 나이 많은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신다는 일은 자신의 안전에 위협을 받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노부모와 가족을 안전을 최선을 다해 챙기는 모습에서 다윗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 본 것처럼 일곱 명의 형들이 있었고,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마음의 상처가 있었음을 시편에서 나타난 그의 고백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부모를 버리지 않았고 그러한 다윗을 하나님 아버지는 잘되게 하셨고 크게 되게 하셨고 유명한 왕이 되게 하시고, 무엇보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날 가문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잘 되고’라는 말은 ‘참 좋게, 번영하다, 형통하다’라는 뜻과 ‘일어나다, 생겨나다, 만들어지다,행해지다’라는 두 말이 합해진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급속하게 변하는 가운
데 가정윤리 중에 최우선 순위인 부모 공경 윤리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예 화
경찰관이 순찰 도중 쓰레기 더미에서 큰 푸대 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니 중풍에 걸린 노인이 푸대속에 버려졌던 것입니다. 자녀들이 중풍걸린 부모를 버린것이었습니다. 그 결찰관이 노인을 경찰서로 데려와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이름, 버려진 날 등은 다 말하였지만 아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혹시 아들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노인은 양로원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아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몰인정한 세상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지 오늘 성경의 다윗의 효심을 본받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1) 육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잘 공경하여야 합니다.
2) 육신의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3) 부모 앞에서 형제지간에 불화하지 말고 우애가 돈독해야만 합니다.
4) 부모님이 자식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큼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부모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지 말고 자식이 먼저 챙겨 준비해 드려야 합니다.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물론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설령 마음에 우러나오지 않을지라도 마치 쓴 약을 먹듯이 억지라도 효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본받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만이 아니라 내 자식이 복을 받는 비결인 것입니다.
예 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칠순 노모를 자신이 운전하는 트레일러에 태우고 달리는 '현대판 심청' 남경룡(44)씨의 사연을 소개해 저녁 시간 TV 앞에 둘러앉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남경룡 씨는 몇해 전 갑작스럽게 쓰러져 뇌수술 후 치매에 걸린 어머니 황석순(77) 씨를 레미콘 트레일러 뒤에 태우고 다니는 효자다. 어머니를 집에 홀로 둘 수가 없기에 선택한 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남씨는 “일하고 어머니 모시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고 담담히 말했다.
남씨는 “처음에는 노인요양병원에 모실까 생각도 했었지만 차마 어머니를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트레일러 운전도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기 위해 시작했다.
행여 머리를 또 다칠까 염려되는 마음에 헬맷을 씌워드린 남씨의 효심에 시청자들은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씨는 대형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머니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차를 몰면서도 3시간에 한번씩 대소변을 가려드리고 손수 싼 도시락을 떠먹여 드리는 남씨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달려 귀가한 후에도 목욕 등 모든 수발을 다 해드리는 효자 남경룡 씨는 “반복된 일상이 힘들기도 하지만...어머니 계심이 더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찌 한순간도 힘들지 않았으랴. 남씨는 어머니 수술비와 입원비가 필요한데 간병인을 구하기에도 막연해 “일을 할 수도 안할수도 없던” 상황을 떠올리며 “어느 봄날 동산에 올라갔더니 세상은 화사하고 꽃이 피어있는데 참 답답하더라”고 말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남경룡 씨는 “세월이 지나 어머니가 안계실 때 다시 이 길을 지나가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며 언젠가 어머니 없이 홀로 가야할 길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날 남씨의 감동 스토리를 본 시청자들은 “하늘도 감동한 효심”에 “방송 보는 내내 눈물만 흘렸다”며 남씨의 효심을 칭찬했다. 시청자들은 남씨의 효행에 감탄과 존경감을 표하며 “어머니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며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한 시청자는 “당신은 이 추위처럼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임을 잊지 마세요”라며 남씨의 효심에 대한 감동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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