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인생 마지막 때에 받은 복/(욥 42:12-17)

미션(cmc) 2012. 12. 23. 07:09

인생 마지막 때에 받은 복
(욥 42:12-17)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욥 42: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욥 42: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오늘은 욥기 강해 마지막 시간으로 복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복을 싫어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창 1:22을 시작으로 ‘복’이라는 단어가 무려 2,031번이나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성경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은 기독교를 가리켜 기복주의 종교라고 폄하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조차 본심을 살펴보면 자신이 한평생 복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복주의’라고 비난하는 까닭은 사람이 자기만 잘되고 복을 받기 원하지만, 정작 복 받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복’이라는 말은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복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복을 주신 것은 단순히 ‘성공, 번영, 장수 등’과 같은 현세적인 복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현세적으로 성공하고, 번영하고, 장수를 누리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복을 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노년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이 와도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때가 더 복된 삶을 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욥입니다.
1. 욥의 초년에 받은 복
오늘 성경 본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그렇다면 욥이 초년에 받은 복은 무엇이고, 말년에는 받은 복은 어떤 복일까요? 욥이 초년에 받은 복에 대해서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단히 큰 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 1: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욥 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물론 욥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복이라는 잣대로 사용하는 기준인 많은 자녀들과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욥을 가리켜 동방에서 제일가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일컫기까지 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생각할 때 부럽기까지 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욥이 어떻게 그와 같은 복을 받았을까요? 설령 부모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유지 관리하여 더 많은 재산을 증식하고 십남매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욥도 많은 노력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받은 복은 욥의 노력으로 계산될 수 없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그와 같은 복을 받은 궁극적인 이유를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그와 같은 욥을 주목하며 시기하는 사단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여기서 ‘울타리로 두르심’이라는 말(&Wc)은 여호아 하나님이 욥의 가정과 재산을 울타리로 둘러치셔서 ‘질병이나 도둑이나 재난이 틈타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축복은 주시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지켜주시기까지 하시는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욥도 그 많은 자녀와 재산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욥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복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복을 받는 다는 말이 아니라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뿐만 아니라 그 주신 것들을 눈동자같이 매 순간마다, 주야로 지켜 주셔야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불의의 재난과 사고 중에서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시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욥을 귀하게 보시고 사단에게 자랑하신 것은 동방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외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온전함과 정직함이라는 도덕성과 하나님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경건한 신앙이 자랑거리였습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이것이 성경 전반에 걸친 참된 복의 정신임을 시편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누가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욥기와 똑같은 주장을 하였습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 욥이 중년에 받은 복
욥이 초년에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복을 받았지만 사단의 시기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욥이 처음서부터 가난했었더라면 설령 고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욥이 중년에는 아주 철저하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1) 사랑하는 십남매 자녀들을 한 순간에 다 잃는 슬픔과
2) 그 많던 재물들이 한 순간에 다 약탈을 당하는 허탈함과
3) 그렇게 건강했던 몸이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의 아픔이었습니다.
욥은 그와 같은 고난을 대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쓰나미처럼 일순간에 다 쓸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초반에는 믿음으로 잘 이겨냈습니다. 욥은 감당하기 어려운 모진 고난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정도로 대단한 믿음으로 사람으로 욥을 시험하던 사단을 당황하게 하였고, 하나님을 매우 기쁘시게 하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고난의 강도가 심해지면서 욥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욥 3: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욥의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그러한 욥을 보면서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징계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욥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욥이 갈수록 고난이 극심해지고 언제 끝이 날지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서 욥은 점차 믿음이 연약해져서 사단이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말을 자주자주 쏟아냄으로 보는이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욥 7: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욥 10: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징계가 아니라 마치 쇠를 강하게 하기 위해 여러 번 뜨거운 용광로에 담금질을 하는 것처럼 욥의 신앙을 사단에게 자랑하시기 위해 연단 받는 것을 허락하신 때문이었습니다. 욥 자신도 그 사실을 깨닫고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은 욥이 마치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불안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그와 같은 욥을 가리켜 복 받은 사람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은 욥을 그와 같은 의인의 반열에 세우시기 위해 욥이 고난당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물론 그러한 인내의 축복은 반드시 고난의 터널을 끝까지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고난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와 같은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현실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인생살이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이제는 교회 생활조차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마귀는 우리를 절망하게 합니다. 낙심하게 합니다. 좌절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게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게 합니다.
그러나 욥과 같은 믿음의 성도들은 그와 같은 고난의 현실만 바라보지 마시고, 고난 중에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위로를 느끼시기 바랍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3. 욥이 말년에 받은 복
욥의 초년에 동방에서 제일가게 하셨던 하나님이 욥의 중년에 혹독한 고난을 경험하게 하셨던 하나님이시라면, 욥을 다시 동방에서 제일가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의 초년에 신실한 믿음을 자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욥이 고난 받는 중에도 신실한 믿음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고난 받는 중에 실망스럽게도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욥은 자신을 축복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고난에 처하게 하시는 섭리가 무엇인가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자기를 공격하는 친구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1) 주께서 나를 억울하게 하셨다.
(욥 19: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2)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않으신다.
(욥 30: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3) 주께서 내게 잔혹하게 하신다.
(욥 30: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그 이유는 욥의 친구들이 인과론적으로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욥의 숨겨진 죄에 대한 징계와 심판을 하시는 것처럼 공격을 가해 왔기 때문입니다.
욥이 이에 대한 변명과 반항으로 자신의 무죄함과 의로움을 지나치게 자랑하다가 보니 상대적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무죄한 자신을 억울하게 공격하시는 것처럼 오해하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욥 32: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욥에게 큰 기대를 거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묵묵히 욥의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그 같은 욥을 내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 오셔서 하늘의 별들과 들판의 야생동물들과 오늘 성경에서는 강가에 ‘리워야단’이라는 악어를 낚시로 잡을 지혜와 능력과 권세가 있는가? 라는 거듭된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 41:1) “네가 낚시로 악어처럼 생긴 바다 괴물을 낚을 수 있겠느냐? 네가 노끈으로 그 혀를 묶을 수 있으며” (욥 41:2) “줄로 그 코를 꿰고 갈고리로 그 턱을 꿸 수 있겠느냐?”
(욥 41:33)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이 괴물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동물은 없다.”(욥 41:34) “이 바다 괴물은 가장 거만한 동물도 얕잡아 보며 모든 교만한 짐승의 왕으로 군림한다.'”
오히려 욥은 그와 같이 오래 참으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욥의 오만함을 깨우쳐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2) 자신의 무지함을 솔직하게 시인하였습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3)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였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 결과 욥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티끌과 새 가운데서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성경에서 티끌과 재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는 것은 성경에서 슬픔과 회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라는 말(!j'n:)은 '후회하다, 위로하다, 회개하다, 애석해 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라는 의미로 칼 미완료 동사(sa'm]a)로 계속해서 회개하는 모습입니다.
욥이 고난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한 일은 오직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같은 욥의 회개를 기뻐하시고 욥에게 초년에 내리셨던 축복을 말년에 갑절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것만이 아닙니다. 욥이 중년에 고난을 받을 때 간절한 소원은 하루 빨리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가시기를 소원하였으나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장수의 복까지 부어주셨습니다.
욥은 엄청난 시련으로 인해 이러한 소망에 대해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난을 받을 당시 아마 그는 그 엄청난 고난으로 인해 최후가 가까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욥 29: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인 욥을 그처럼 비참히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선한 소원대로 이 땅 위에서 장수하며 일생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욥 42: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그 결과 욥의 패망을 소원했던 사탄은 패했으며, 욥의 믿음과 인내가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과연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갈수록 황금만능주의의 시대로 전락되어, 돈 앞에 양심도 의리도 심지어 신앙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상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받아야만 할복은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인생 말년이라는 때가 다가옵니다. 설령 그 때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할 축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생 노년에 망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벌이면 무엇 합니까? 아무리 높은 관직을 누리고, 대통령과 친분이 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생 노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일평생 쌓았던 덕망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면 그 많은 소유와 화려한 명성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욥은 일평생 동안 믿음으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의 것을 빼앗거나 불의한 재물로 치부하거나 부도덕한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인생의 중년에 고난을 받으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자신의 오만함과 하나님 앞에서 불평한 죄악을 회개하였습니다.
욥이 그러했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할 죄가 없을까요? 회개만이 복만는 길입니다.
그와 같은 욥이 말년에 받는 복은 먼저 간 십남매에 하나님이 말년에 십남매를 또 주셨으니 배가 되었고, 욥의 재산도, 건강도 배를 더 받았습니다. 욥은 땅에서만 장수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욥을 가리켜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욥을 평가하였습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 5:11) 그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내 주께 진실했으므로 지금 하늘나라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욥은 슬픔을 이기며 끝까지 주님을 믿은 사람의 모범입니다. 욥이 겪어 낸 일을 보고 우리는 주님의 계획이 축복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 말년에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깨닫고 우리도 욥처럼 회개함으로 인생 말년에 욥처럼 갑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오늘의 삶이 힘들다고 할지라도 욥처럼 끝까지 인내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마지막 때에도 욥에게 축복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갑절의 복을 허락하여 주실 것을 믿고 욥처럼 믿음으로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