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중한 약속
(창 3:11-17)
(창 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창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우리는 “작은 씨를 땅에 심으면 땅속에 습기와 따사한 햇볕을 받고 싹이 나와 자라면서 그 뿌리를 깊이 땅속에 박고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자라가는 과정에서 잎은 넓게 펴서 보다 더 많은 태양광을 흡수하여 광합성을 하는 과정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모진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와 병충해를 이겨야만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심었던 그 작은 씨는 어디서 났을까요? 물론 그 씨 역시 그 이전에 오랜 세월동안 그와 같은 생명의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거둔 결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최초의 씨는 어디서 났을까요? 그 대답이 유일하게 창세기 1장의 엿새 동안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셋째 날에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창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러므로 알고 보면 오늘 우리가 먹는 밥이나 과일은 우연이 아니라 갑작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하나님이 오랜 전에 준비해 주신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예화
12월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있는 달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위키 백과에 나온 것을 보면 로마 및 이집트, 이교도 지역의 태양 숭배 관련 신화에서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로 기념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일년중에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冬至) 이후부터는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12월 25일이 태양신 기념일로 지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교 축제들은 교황 율리오 1세가 주후 350년 12월 25일을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고 '기독교'의 축제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성탄절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아기 예수가 언제 탄생하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천 여 년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몇 월 며칠에 태어나셨는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황 율리오가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사상을 없애기 위해 12월 25일을 참 빛으로 어두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 탄생기념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교도의 축제일이 기독교의 축제일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을 기리는 성탄절의 역사는 불과 이천년 밖에 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부르는 것이 값인 고려청자의 가치는 탁월한 빛깔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려시대라는 오래된 역사성과 흔치 않다는 희귀성 때문에 사람들이 소중한 문화재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리는 성탄절의 소중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성탄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역사성 때문에 더욱 소중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언제부터 준비하셨는가 하는 것을 증거해 주는 말씀입니다.
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만물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가 뛰어나신 분이신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가운데 최대 걸작품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세상 어느 피조물보다 가장 지혜롭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상의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마음껏 복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엿새 동안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도 아름다운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그 열매를 자유롭게 따먹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와 같은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시면서 단 한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더불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그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설령 하나님이 인간에게 아무런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고 단지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인간은 당연히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조건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선악과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 다고 분명히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그와 같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충분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그와 같은 명령을 하신 것은 그 만큼 인간에 대한 기대가 크셨기 때문이지 함정을 파놓고 등을 떠미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생명과일을 마음껏 따먹으면서 창조주 하나님이 금하신 법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였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죽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흔히 창조주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가? 라고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아무리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일지라도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의 부탁은 거절을 못할 뿐 아니라, 배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폭세계에서도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도 흔히 자유를 주장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자유이든지 반드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어 있고, 그 법을 어기면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설령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성경 안에 이 시대의 선악과가 무엇인가를 다 가르쳐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큰 기대를 거셨던 것처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큰 기대를 갖고 계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
흔히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처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큰 실망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과 인간과의 긴밀한 관계를 시기한 사단이 뱀을 사주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행도 죄악도 반드시 시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때는 마치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주리셨을 때와는 정반대 상황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장소는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생명나무도 함께 심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생명나무열매를 자유롭게 따먹을 수 있는 에덴 동산 중앙에서 인간은 생명과일 대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을 넘어 배은망덕한 반역의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더욱 실망케 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동기가 너무나 배은망덕하고 불순하였습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말(hy:h)은 ‘하나님처럼’이 아니라 ‘하나님이 된다’는 와우계속법 완료형(!~t,yyIh]wI)입니다.
이는 차마 인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말이 아닙니까? 감히 피조물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명령과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닙니까? 마땅히 인간은 그와 같은 망령된 뱀의 유혹을 단칼에 거절하였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부부가 공모를 해서 하나님이 된다는 뱀의 말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함께 따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았고 뱀의 말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뱀이 말대로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게 되었습니다. 산다고 하는 자체가 고통이요,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가 만물 가운데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생명과일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는 생육은 하나님이 번성케 하시는 축복이었고, 생명과일은 무엇을 먹을까 염려조차 하지 않게 하였고,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영생복락을 누렸으나,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께 도전한 인간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다 고통과 형벌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결코 돈 문제가 아닙니다. 팔자소관이 아닙니다. 운명이 아닙니다. 신의 장난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사단의 유혹을 따라 하나님께 정면도전한 인간의 배은망덕한 불신앙과 불순종의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3.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범죄한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부부사이에 갈등과 반목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뱀은 인간에게 “죽지 아니하리라”하였으나 결국 인간은 죽게 되었고, “하나님이 되리라”하였으나 비천한 존재가 되었고, “눈이 밝아 질 것이라” 하였으나 결국 영적인 눈까지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하신대로 된 것이며, 범죄에 대한 당연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1)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그 기회를 변명으로 일관함으로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2)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은 범죄한 아담의 자손이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곧 남자와 무관한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과 무관하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나 과장이 아니라 바로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이 오래 전에 아담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가 인간을 범죄하게 만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노라면 크고 작은 사고를 만나게 되는데 다른 곳은 다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지만 만일 머리의 뇌를 다치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겪게 되는 것처럼 여자의 후손은 사단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를 깨 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치명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같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은 인간의 조작이나 신화와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때가 차서 사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 죄로 말미암아 드러난 수치를 짐승의 가죽으로 가려 주셨습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기서 죄 없는 짐승이 죄지은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예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 모든 인류의 죄를 그 몸에 담당시키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저와 여러분을 온전히 구원하시고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인간은 부끄러운 수치를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려고 애썼으나 곧 말라 버리자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입히심으로 수치를 온전히 가려 주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될 수 있게 하셨으며 영생 가운데서 왕노릇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흔히 약속은 쌍방 간의 합의에 의해 성립되고 그 약속을 쌍방이 지켜나갈 때 그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배신한 인간을 궁극적으로 온전히 구원하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시겠다는 소중한 약속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여자의 후손이 하나님의 독생자였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할 때만이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창 3:15에서 시작된 약속이 마 1:23에 이루어지기까지 기나긴 세월동안 인류의 역사는 창세기에서 복음서까지 기록된 성경 말씀처럼 불신앙과 불순종과 거듭되는 배신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때가 되니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독생자 에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약속하신대로 뱀의 자손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구워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양발에 십자가 못 박히시면서 소중한 약속을 이루어 주심으로 마침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금년 성탄절은 반복되는 연례행사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오랜 전에 준비해주신 소중한 약속이 이루어진 날임을 깨닫고 그 감춰진 의미를 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1) 범죄한 인간에게 친히 찾아오셨던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친히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탄절이 바로 임마누엘하신 날입니다.
2) 범죄한 인간을 위해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순결한 몸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3) 범죄한 인간을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혀 수치를 가리신 것처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가죽옷보다 더 좋은 이신칭의라는 세마포를 입게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창 3:15)의 약속하신 소중한 약속은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습니다. 소중한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실하신 하나님이 또 하나의 소중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처음 약속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은 두 번 째 약속도 지키실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이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도 생각과 말과 행실에 있어서 주님을 닮은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소중한 약속들을 다 이루심으로 신실하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신실한 하나님을 닮아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
(골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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