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사람들 중에 평화/(눅 2:11-14)

미션(cmc) 2013. 1. 4. 20:27

사람들 중에 평화
(눅 2:11-14)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금년은 유난히도 추위가 극성스럽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거기에다 마음까지 불안과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더 춥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에 평화를 얻게 된다면 비록 육신은 추워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것을 참고 견디는 정도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행복해 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그 같은 ‘마음에 평화’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몇 달 전 주일 오후 예배시간에 유명한 개그맨을 간증강사로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개그맨은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어떻게든지 웃겨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연히 끝나고 나면 마음이 공허해져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파탄도 자주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러한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신앙심 때문이며, 지금 부부가 교회의 신실한 집사와 권사로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고 중화식당과 쇼핑몰을 차렸는데 매출이 100억이 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웃을 수도 있습니다. 개그맨이 되어 사람을 웃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웃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평화로운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행복의 진원지는 돈도 명예도 쾌락도 아니라 마음에 평화가 넘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에 평화는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진정한 마음에 평화가 있으면 궁궐이나 초막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는 찬송처럼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간증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 평화가 없었던 사람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 땅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 쌓여 늘 평화가 없던 곳이었습니다.
일찍이 나라가 멸망을 당하여 앗시리아, 바벨로니아,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흘어저서 생존을 위해 인종차별과 가혹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땅은 갈수록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평화가 없었던 사람들이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위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면 그중에 첫째는 먹을 것에 대한 염려가 없어야 합니다. 둘째는 차별을 당하지 말아야합니다. 셋째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목자에 대해 낭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예수 탄생 사대의 복음이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사장들이 아닌 최 하층민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농경지가 점점 부족해지던 상황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들은 점점 황량한 광야로 떠밀려 나면서 목자들은 양과 염소와 함께 광야로 떠밀려 풀밭을 찾아 가축들을 먹여야 했습니다.
비록 돌과 바위가 많은 광야라 할지라도 비가 오는 6개월의 우기 동안은 작은 풀들이 돋아나 그런대로 버틸 수가 있지만 비가 오지 않는 6개월의 건기를 어떻게 버티느냐 하는 것이 늘 걱정이었습니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가축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짐승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쀼쭉한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이나, 예리한 발톱과 같이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한 가지씩은 다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온순하고 미련하고 그러한 무기가 없기 때문에 목자의 보호가 없이는 맹수나 도둑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자들은 양들이 새싹을 뜯거나 곡식의 그루터기 사이에 남아 있는 낟알을 먹게 했습니다. 여름이 되어 날이 더워지면, 목자들은 양 떼를 이끌고 시원한 목초지를 찾아 좀 더 높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밤낮으로 밖에서 지내면서, 가파른 푸른 언덕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밤에는 울타리 없이 노출된 양 떼를 보호했을 것입니다. 때때로 목자들은 양 떼가 동굴 안에서 밤을 지내게 했는데, 그렇게 하면 양들을 자칼이나 하이에나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한낮에 목자들은 양들을 시원한 물웅덩이로 이끌고 가서 물을 먹였습니다. 웅덩이가 마르면 양 떼를 몰고 우물로 가서 마실 물을 길어 주었습니다.
매일 저녁에 목자들은 양들의 수를 세고 각각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아침이 되어 양들을 부르면 양들은 목자를 따라 목초지로 갔습니다. (요한 10:3, 4)
과연 누가 그러한 목자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 할 것이며, 누가 그러한 목자들의 삶이 평화롭다고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다양한 직업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직업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돈을 많이 버는 기업가일까요? 정부 요직을 차지한 고급 관료일까요? 대선 출마를 꿈꾸는 정치인일까요? 과연 그 사람들에게 진정한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까? 마음에 평화가 없이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다고 진정 행복한 사람일까요?
진정 행복한 사람은 자기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까지도 마치 독감이 옮기듯이 행복과 평화가 옮겨지는 행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과연 그러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진정한 마음에 평화는 사회적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음에 평화를 소유한 사람은 궁궐이나 초막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는 찬송처럼,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간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2. 천사들이 전한 소식
아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첫 성탄절의 소식을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이 하필이면 천박한 직업을 가진 최 하위계층에 속하는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졌습니다.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눅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여기서 ‘밖에서’ 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따뜻한 안방이 아니라 추위가 살 속을 파고드는 들판을 뜻하며, ‘지키더니’ 라는 말(fulakh)은 ‘망보기, 파수, 경계, 보호, 야간경비’를 뜻하는 말의 현재 진행형으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맹수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행동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그렇게 하고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첫 성탄의 소식을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이 베들레헴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며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들려준 소식은 매우 의미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렇다면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성탄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등을 진 인생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하여 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과 평화가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아니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즐겨하면서 일평생을 살아갑니다.
모든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불안의 근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이 가난이나 질병이나 사고나 재난을 두려워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고 한 이유는 무슨 뜻일까요?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아니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즐겨하면서 일평생을 살다가 결국 죽음과 영원한 지옥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보석금을 지불하여 주셨기 때문에 죽어도 사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만인의 명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평화의 통로가 된 목자들
그렇다면 성탄의 기쁜 소식을 하필이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했을까요? 당시 목자들은 양떼를 거닐고 온 사방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거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목자들은 최하위에 속하는 비천한 사람들로 취급하였습니다. 천사들이 하필이면 그와 같은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물론 목자들은 천사들이 전해 준 소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귀로만 전해 들었습니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 몇 번지에서 태어났다고 말해주지 않고 단지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위에 누웠다고만 말하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은 그와 같은 천사들이 전해준 소식을 그대로 믿고 즉시 순종하여 아기 예수를 찾아 나섰습니다.
물론 목자들은 천사들의 안내나 지도나 동방박사들처럼 별빛의 인도도 받지 못했지만 즉시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습니다.
(눅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여기서 ‘빨리가서’라는 말은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고, ‘찾아서’라는 말은 ‘부지런히 끊임없이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 같은 목자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마침내 천사의 말처럼 마구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 베들레헴에 있는 성탄 기념 교회 지하 동굴입니다.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기쁨의 좋은 소식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이 전해 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긴 여행과 출산의 고통으로 지친 마리아와 요셉은 그 같은 소식을 듣고 마음에 평화와 큰 위로와 아기 예수에 대한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눅 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눅 2: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그렇다면 목자들은 단순히 천사들이 전해 준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하기 위해 생명처럼 여기는 양떼들을 들판에 버려두고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많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목자들은 그 수고에 대한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도 받지 못했습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가 탄생이 만백성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됨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전하고 난 후 그 수고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헛수고만 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천사의 말대로 순종하였을 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값진 축복을 최초로 만끽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눅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여기서 ‘영광을 돌리고’라는 말(doxavzonte")과 ‘찬송하며’라는 말(aijnou'nte")은 모두가 다 현재 진행형을 뜻하는 동분사 현재 능동태로 계속해서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당시 헤롯왕에게 이같은 평화가 있었을까요? 당시 대제사장들이 목자들처럼 이같이 영광을 돌렸을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 신분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고 무슨 복을 받아야 할까요? 무슨 복을 받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예수를 믿어 출세하고 성공하고 신분이 상승하고 재산이 늘어나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지만 한시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기뻤던 만큼 슬프고 낙심할 때가 반드시 부작용처럼 따르는 불완전한 복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목자들이 받은 복은 신분에 소유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세상에서 최초로 성탄의 축복과 더불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입술로는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을 통해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마음에 참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 화
열 다섯 살 때인 중학교 3학년 때에 친구들과 축구 시합을 하다가 공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소경이 되기 2년 전인 열 세 살 때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 가셨고, 소경이 된지 일 년 만에 아들이 영구히 장님이 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뇌일혈로 돌아 가셨다. 목사가 되겠다던 아들이 안마사나 길거리의 구걸 행인이 될 것을 생각한 나머지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이제 맹인 소년 강영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다시 일년 사 개월만에 가장이었던 누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삶의 의지를 잃고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16세의 맹인 소년 강영우는 아홉 살 짜리 여동생과 열 세살 짜리 남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강영우의 집안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고 말했다. 집안 대대로 섬기던 조상들의 신이 노해서 벌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소경인 자신이 동생들을 돌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동생은 철물점에서 먹고 자고 심부름을 해주면서 저녁에는 야간 학교에 다녔고,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보내어졌다. 그리고 자신은 공병우 박사가 세운 맹인 재활원에 입소해서 타자와 점자를 익혔다. 그리고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맹학교에서 안마술과 더불어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맹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받았던 수많은 오해와 편견과 수모를 극복하고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10등으로 입학을 했고, 사 년 후에는 2등으로 졸업을 했다.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교육학전공으로 3년 8개월만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교수, 인디애나 주지사 재활 정책 자문위원, 조시 부시 대통령시 교육부 차관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한 때는 원망스럽고 두려웠던 하나님이었지만, 자신의 고통 속에 동참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다.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도구로 인해서 나의 실명에 감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기쁘게 가리라."
그는 지난 연말 췌장암과 함께 '남은 삶은 한 달 남짓'이란 시한부 생명 진단을 받은 후, 평화장학금으로 25만 달러(약 2억9000만원)를 기부하였다.
지난해 10월 담석으로 병원 검진에서 췌장암이 발견됐고 '한달 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순순히 현실을 수긍하고 생애 마지막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기 위해 퇴원한 후 지인들에 이메일을 보냈다.
"여러분이 저로 인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길 바란다.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인사 드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인사를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마음에 평화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목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목자들은 당시 중산층이 아니라 최하위층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는 사람들이었음을 우리도 본받아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목자들과 같이 일평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마음에 참평화의 복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1) 자신들의 직업을 천직을 여기고 자기들이 기르는 양떼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천사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전해준 소식은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것처럼 소식이었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3) 천사들의 명령을 순종하기에는 핑계거리가 너무나 많이 있었지만 즉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4) 하필이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를 보고서도 천하게 여기지 않고 천사의 말대로 그 아이가 만인에게 큰 기쁨을 주실 메시아가 탄생하신 것이라고 순수하게 믿었습니다.
5) 긴 여행과 산고의 고통으로 지쳐 있던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이 전해준 소식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함으로 큰 위로와 확신을 주는 최초의 복음전도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6)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요, 최초로 아기 예수를 알현하는 영광스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여전히 목자라는 직업으로 만족하며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간증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믿는 오늘 우리가 먼저 삶은 이웃과의 평화를 도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웃과 화목해야 합니다. 부부와 화목해야 합니다. 형제자매와 화목해야 합니다. 이웃과 화목해야 합니다. 교우들과 화목해야 합니다. 계층 간에 차별하지 말고 화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화목을 주시기 위해 화목주로 이 세상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금번 성탄절에 우리 모두에게 이 같은 평화가 차고 넘쳐 그것을 남에게 흘러가게 하는 평화의 통로가 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