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모든 일을 사랑으로/(고전 16:14)

미션(cmc) 2013. 1. 4. 20:29

모든 일을 사랑으로
(고전 16:14)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오늘은 2012년 마지막 주일로 우리 모두 자신이 한 해 동안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돌이켜 보고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회개하고 새해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를 알기 위해서는 잣대가, 무게를 알기 위해서는 저울이 필요함과 같이, 한 해 동안 내가 하나님을 바로 믿고 바로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잣대와 같은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와 같은 잣대나 저울은 성경이지만, 그 성경을 근거로 2012년 한 해 동안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하는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교회의 신년 표어입니다.
그러므로 해마다 새롭게 정하는 표어는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어떤 믿음으로 한 해를 살것인가? 하는 내면적인 자세와 정신을 뜻하는 것으로 한해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그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신앙의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2012년 우리 교회 표어는 (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성도" 라고 정하고 한해를 살아왔습니다.
얼핏 보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평범한 주제이기 때문에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긴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이 단순히 인간들끼리 서로 좋아하면서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오래참음과 넘치는 고난과 희생이 전제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보지만 오로지 돈이 최고의 가치로 전도되어 돈 앞에서는 가정과 교회도 이웃도 없는 냉혹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나를 희생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사랑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나,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무조건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깨우쳐 주시고 또한 감당 할 수 있는 힘과 능력까지 부어주면서 하라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 중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하신 사회적인 현상에 현실 도처에서 산불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도 바울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세의 여러 가지 현상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신불신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포악해지는 것이라고 딤후 3장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갈수록 점점 더 사랑이 없는 메말라가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 세상이 그와 달리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신앙심이 투철해진다면 설령 나 하나 잘못 믿는다고 할지라도 큰 영향이 없겠지만, 정반대로 세상이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나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른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삶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이 귀감이 되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와 자손이 복을 받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 (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아주 짤막한 말씀이지만 마치 태양계 안에 해와 달과 지구를 다 품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한다고 말씀 안에 과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총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모호하여 천인이면 천인의 해석이 다 다를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인생이란? 하나님의 뜻이란?” 말과 더불어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보다 성경 말씀이 가장 정확한 해석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흔히 사랑장이라고 일컫는 고전 13장에 사랑을 역설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사랑은 사람의 몸에 피와 같이 신앙 생활에 절대적인 요소로서 아무리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고,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정도로 남을 돕는다고 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말짱 헛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 이유는 그러한 결과물들이 신앙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방언이나 예언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나 자기 몸을 불사를 정도의 희생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예수님이 본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해 동안 하나님께 성령 충만, 믿음 충만을 구하고 나름대로 봉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있는 가정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섬겼을 것입니다.
또한 나름대로 그로 인해 어떤 성과나 결과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은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행한 것인지 한 번 자신이 지나온 한 해를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돌아봄과 점검이 필요한 까닭은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것이고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심판 받게 될 때 주님의 심판 기준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가족 섬김, 교회 봉사, 구제 활동을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았지만 그것이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교훈한 말씀이 예수님의 산상 보훈입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대단하지 않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낼 정도로 믿음이 있어 보이고, 많은 권능을 행할 정도라면, 누가 보아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처럼 생각되고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도리어 불법을 행한자 들이라고 책망하시면서 상급대신에 내어 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슨 일을 할 때 주님의 기준과 내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렇습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을 섬길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안에서 무슨 일을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무슨 선한 일을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하는 저부터 과연 가정에서 내 가족들에게, 교회 안에서 주어진 책임을 ,직장이나 사회에서 이웃을 대할 때 과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겼는지를 돌이켜 보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막론하고 갈수록 빈번해지고 더 악독해지는 온갖 사건들의 근본원인은 한 마디로 사랑없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세상은 사랑이 메말라 간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몸된 교회만은 사랑의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늘 사랑이 푸르고 열매가 가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신불신을 막론하고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이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갈등하고 분열하고 심지어 법정까지 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나가야 할 교회의 본질인 사랑은 화려한 말장난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입니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같은 말씀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일곱 가지와 또 하나는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일곱 가지의 자세입니다.

1)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일곱 가지 자세
사랑은 1) 오래 참고 2) 온유하며 3)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4) 모든 것을 참으며 5) 모든 것을 믿으며 6) 모든 것을 바라며 7) 모든 것을 견디면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2)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일곱 가지 자세
사랑은 1) 시기하지 아니하며 2) 자랑하지 아니하며 3) 교만하지 아니하며 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6) 성내지 아니하며 7)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이러한 마음의 자세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겼다면 가족들이 좀더 행복했을 것이고, 교회는 좀더 화목했을 것이고, 이웃과는 사촌이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전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해마다 한두 차례 새 생명축제를 하게 될 때마다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일인지 점점 더 실감하였을 것입니까?
교회는 그렇게 힘들게 해서 돌 하나하나를 모아서 탑을 쌓는 것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전도는 한 사람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나에게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게 한 적이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힘들게 가족들을 섬겼기 때문에 나는 사랑만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이나 부모가 나의 오래 참지 못함이나 사랑없음으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것은 선태 사랑이 아니라 준엄하신 주님의 명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 15:17)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미운 사람은 미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감정은 당연히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수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설령 내 마음이 내키지 않을지라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날리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상대방이 품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사라지게 되고, 미움과 갈등으로 인해 어둡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깃들게 됩니다.
그 것이 결코 하나님만을 위한 일이나 남을 위한 일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마귀가 제일 못 참는 것은 평화입니다. 마귀는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이간하고 분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길 때 마귀는 울면서 떠나가게 되고, 진리의 영이요, 사랑의 영이신 성령이 충만한 가정과 교회와 세상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구와 가능성이 많은 인도를 오랜 세월동안 식민 통치를 하면서 수많은 선교사들을 인도에 파송하고 선교단체들이 인도에 들어갔지만 인도는 아직까지 힌두교와 불교가 대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화
인도의 지도자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의 자서전을 보면 젊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간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고려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인도 사람들을 구별했던 카스트라는 계급제도에 대한 해결책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주일,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기독교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간디가 예배당으로 들어서자 안내원은 그에게 예배 자리 내주기를 거부하며 같은 계층의 사람들과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간디는 만약 기독교인들에게도 계급의 상하가 있다면 그냥 힌두교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발길을 돌려버렸습니다. 훗날 간디는 예수님을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에는 동의를 하지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앞길을 막는 것은 마귀도 아니고 불신자들도 아니고 바로 이웃 사랑을 망각한 기독교인 자신들입니다. 그러한 의식에 쪄들었던 영국 교회의 후손들은 오늘 날 교회를 무슬림들에게 넘겨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간디가 남긴 “ I like Christ but I don't like christian, because they aren't like Christ.(나는 예수는 좋아하나, 크리스챤은 좋아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는 입지 조건이 제일 좋은 교회로 매우 번성하였음 당시 남긴 기독교 유적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도 한 때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칭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폐허에 잔재만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 교회가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진정한 교회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그 사랑의 불이 가슴에서 계속 타올라서 그 사랑을 가지고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 가정은 눈에 보이는 우리의 육신을 재활시키는 병원이라면, 교회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요람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매일 가정에서 때 묻은 옷을 갈아입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먹고 마시고 잠을 자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는 부모와 부부와 형제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교회는 단지 듣기 좋은 설교를 들으려고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세상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새 힘을 얻어 다시 가정과 직장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성도가 되자는 표어는 금년으로 시효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새해가 오더라도 변함이 더욱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1) 그러므로 한 해를 돌이켜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2)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부단히 공급받아야 하고,
3)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기로 다짐하는 금년 마지막 주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이고, 그러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와 복을 충만히 부어주심으로 행복한 가정, 화목한 교회, 좋은 이웃을 이루어가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