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을 받은 교회
(살전 1:4-10)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건설회사가 고급 아파트를 분양하기에 전에 건축할 실제 아파트와 똑같은 크기와 디자인을 한 모델 하우스를 만들어 전시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든 사람들이 청약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모델이 될 만한 몇 몇 교회들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는데 그 대표적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서머나 교회이고 지난주부터 강해를 시작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지난주 (살전 1: 1-4)을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불과 세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도 어느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로 바울이 생각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참 감사할 것이 많은 교회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와 같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여기서 ‘아노라’라는 말(ei[dw)은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보다, 알다, 경험하다‘라는 뜻으로 자기 직접 경험한 확고한 이해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지 않았다면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겸비한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받은 것이 무슨 공로나 선행 행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 좋은 예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선민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선한 민족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겠지만, 성경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정반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까닭은 다른 민족도바 수효가 작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모양으로 변화되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도 본받는 이 시대의 데살로니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
기독교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말씀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중세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 3대 원리는 1) 오직 믿음으로, 2)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3)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불가 세 안식일 동안만 아무런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의 복음만을 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여기서 ‘말로만’이라는 말은 복음을 전하는 통로와 도구를 뜻하는 말이라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말은 복음이 단순한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신 성경 말씀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단순한 문자나 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심령을 찔러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게 될 때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자기가 지금 바로 살아가고 있는지 잘못 살아가고 있는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만일 바로 살고 있다면 성령께서는 그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고, 정반대로 바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성령께서 회개와 변화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전하고 듣는 시간에 그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사람들 속에 변화가 일어날 때 동시에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 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폭풍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성경에서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은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이미 일어났던 교회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울부짖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 사도의 말대로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숫자 삼천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오늘날 한국 교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최선의 처방은 바로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가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마다 저에게도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2013년 우리 교회에도 예배시간마다 그와 같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믿고,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성장과 변화하는 교회
하나님이 만드시고 기르는 생명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지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반드시 아름다운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도 동일한 변화와 성장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 드렸을 때 그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많은 핍박과 환난이 밀물처럼 몰려 닥쳤습니다.
그런 경우 연약함을 핑계로 포기하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겨우 견뎌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한 것은 금욕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기쁨이었습니다.
성령은 핍박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복음을 들었을 때, 나도 그 주님을 본받앙 하겠다는 결심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당하는 핍박은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될 내세의 상급을 믿었을 때 핍박 중에서도 도리어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기쁨입니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건강하게 잘 자란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처럼 지금까지 섬겨오던 우상 숭배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히 변화된 것입니다.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우리가 지금 읽고 듣는 복음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듣고 받은 성경보다 더 보강된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확신과 능력을 주셨던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를 믿게 하시고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 확신과 감동을 주시는 동일한 성령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에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돌이켜야 하고, 끊어야 할 우상들을 야곱의 아내 라헬이 버리지 못했던 드라빔처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다 쏟아 부어야 할 우리의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전심으로 찬양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기 때문에 성령이 더 이상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2013년 우리는 열심도, 성실도, 책임감도, 사명도 다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우상들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우상들이 나의 마음과 성품과 목표와 언어와 일상생활 곳곳에 감춰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들을 먼저 사냥개처럼 찾아내어 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과감히 버리고 돌아서서 빈 마음과 성결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최선을 다해 섬기기로 결단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변화가 필요함은 만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기대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3. 세상에 널리 본이 되는 교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그와 같은 성장과 변화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택하신 사람들이 모인 아름다운 교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냄새는 향기이든지 악취이든지 퍼져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되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체취만이 나는 것이 아니라 악취이든지 향기이든지 둘 중에 하나의 냄새가 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아름다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은 마치 은은한 천리향의 향기처럼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 소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 후에 우상숭배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과감하게 단절하고 돌이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범적인교회라는 좋은 소문이었습니다.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그와 같은 좋은 소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지역에 복음 전파와 더불어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갔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어야지! 우리 교회도 그러한 교회가 되어야지!‘ 라고 도전을 주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입으로만 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전파는 우리의 행실로도 해야 합니다. 물론 억지로 거룩하고 진실한 체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될 때 우리의 선행과 진실함을 통해 복음은 이웃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과 가치관과 의식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가에 따라 교회의 질이 좌우됩니다.
세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문제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을 교회, 문제는 없지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교회, 주변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세 번째에 속하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교회로 불러 모으신 까닭은 우리 교회를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이 시대의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의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단순히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하는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복음과 더불어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설교만 듣고 성령만 받으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1)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2) 지난날 잘못된 죄에 대한 회개와,
3) 말씀에 적극적인 순종의 자세와,
4) 주실 축복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고,
5) 성령의 기쁨으로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6)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살후 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그렇게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우리 교회가 지역의 여러 교회들과 사회에 본이 되는 교회로 높여 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롬 1: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렇게 할 때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심판대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과 상급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모인 바람직한 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상입니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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