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에베소서강해

[이규현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13)] 성품 닮아가는 공동체

미션(cmc) 2013. 7. 12. 18:44
[이규현 목사의 에베소서 강해(13)] 성품 닮아가는 공동체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
  
 ▲ 이규현 목사 

본문:엡 4장 25~32절


성숙한 신앙은 성품과 연결된다. 성품은 언제 검증되는가?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품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감정적인 문제를 다룬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왜 바울은 다른 많은 주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들고 나오는가? 분노는 공동체 안에서 자주 당면하게 되는 실제적인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은 공동체를 깨뜨리는 독성이 있다. 분노는 옛사람의 옷이고 동시에 육체의 열매이다. 디도서에서 지도자의 자격을 논하며 “급히 분내지 않는 것”을 언급한다. 분노는 마치 산불과도 같다. 조그만 불씨가 산을 태워 버리듯이 자칫하면 무서운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류최초 살인은 가인의 분노로 인해 일어났다. 분노는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연관된다.

일반적으로 분노의 감정처리에 있어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의 감정을 너무 지나치게 억누르는 경우다. 그것은 분노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분노를 키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폭발해버리는 형이다. 여과 없는 자기감정의 표출은 자기는 물론 주변인들에게 상처와 피해를 입힌다.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우선 분노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보아야 한다.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분노 그 자체를 죄라고 말할 수 없다. 문제는 통제하지 않은 분노다. “죄를 짓지 말며”라는 말은 감정을 절제해야 함을 가르친다. 죄를 짓는다는 말은 분노를 절제하지 않고 방치해 버릴 때 일어나는 일이다. 분노 이후에 일어날 막대한 피해나 손해를 생각해야 한다. 잠언 29장 11절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낸다”고 했다. 통제의 기능이 없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는 것이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분노는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다가 방치해 두면 분노의 감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통제되지 않는 분노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표현할 때 습관적 분노가 된다. 분노의 중독성이다. 잠언 16장 32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돼 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용사라 할 수 없다. 특히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고 했다. 분노를 빨리 풀지 않으면 마귀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분노는 구습이다. 분노로 인한 감정의 노예가 아닌 분노하는 감정의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승화해야 한다.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5장 8절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분노를 극복하기 위해 32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자 하는 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