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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엡 5장 18~21절
참된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곳에 인간의 욕망이 분출되고, 자연히 우상숭배가 벌어진다. 그때 원망과 불평이 생겨난다.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사고가 터진다. 그러나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면 불평은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된다. 성령충만은 다른 삶으로 계속 이끌어 낸다. 피차 복종의 삶이다.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에서 대개 복종을 연약한 자의 굴종행위로 오해한다. 오늘날 인간관계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고자 하는 폭력성이 난무하고 있다. 바울은 죄의 뿌리에서 나온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가 아니라 관계성이 강조된 공동체 사상을 강조한다. 바울의 서신서 안에는 ‘서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독립된 개인만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의 독특성은 상하 수직, 명령과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로 계급적인 관계나 힘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여가는 공동체와는 구별된다. 그래서 자발적 섬김의 공동체를 꿈꾼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나 감투가 아니다. 계급은 언제나 투쟁을 낳는다. 힘을 주장하면 또 다른 힘의 저항을 받게 된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 구조가 일어나는 이유는 세속적인 힘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섬기는 리더십이 아니라 군림하는 리더십의 설 자리는 없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내가 왕이 되려고 하는데서 벌어진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이 늘 꿈틀거리고 있다. 섬기려고 하기 보다는 섬김을 받고자 하면 공동체는 편할 날이 없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첨예한 자존심의 칼날을 세우고, 대립과 경쟁의 구도 속에서 섬김을 강요하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님은 사람들을 자신의 힘을 이용해 통제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종의 리더십을 갖고 계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누구에게나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진정한 순종을 배운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시작한다. 성령의 충만을 통해 피차복종의 삶을 살면 비로소 한 몸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 진정한 겸손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위해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태도다. 성령은 하나님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의 모든 관계 안에서 자발적 복종의 원리를 실천하게 해준다. 그리스도의 참된 공동체는 ‘복종’이란 단어가 아름답게 빛이 나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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