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계시록 21장 9절~22장 5절은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가 종말에 어떠한 복을 경험할 것인지에 대한 묘사인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요소로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것은 성벽입니다. 성벽은 그 치수가 크고 높다고 묘사됩니다(12절). 그 높이가 144규빗인데, 이는 약 70m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이 치수는 실제로 크고 높은 것이지만, 도시의 길이와 너비에 해당하는 1만2000스타디온(2400㎢)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형편없이 작은 치수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치수로 성벽이 높고 크다고 했을까요? 먼저 저자가 성벽의 치수에서 144규빗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44는 12×12의 결과로, 약속으로서의 구약의 교회(12)와 성취로서의 신약의 교회(12)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성벽을 통해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성벽에 함께 붙어있는 12기둥에 새겨진 열두 사도의 이름과 열두 진주 문에 쓰여진 열두 지파의 이름을 통해서 더욱 확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과 더불어 저자는 그 성벽이 크고 높다는 표현을 통해 도시가 완전하고 완성된(finished) 것이며, 완전한 안전(security)과 장엄함(magnitude)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또한 열두 문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12절), 그리고 성벽의 열두 기초 석에는 신약 교회의 기초인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14절). 이는 새 예루살렘이 약속인 구약 백성과 그 성취인 신약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구약 백성과 신약 백성은 두 백성이 아니라 하나의 백성입니다. 열두 문에 새겨진 열두 지파의 이름은 구약성경 에스겔 48장에 등장하는 내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열 두 사도는 교회의 기초로서 묘사됩니다(엡 2:20). 그러므로 열두 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그리고 열두 기초 석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어린양의 신부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즉 우리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피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신부들이 되어야 합니다. |
'설 교 > 요한계시록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윤성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21)마라나타 (0) | 2014.01.20 |
---|---|
[박윤성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9)새로운 피조물 (0) | 2014.01.20 |
[박윤성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8)어린양의 혼인잔치 (1) | 2014.01.20 |
[박윤성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7)바벨론의 멸망 (0) | 2014.01.20 |
[박윤성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6)성도가 결국 이깁니다 (0) | 201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