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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에서 “속히 오리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자신의 오심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오심을 말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처음부터 임재하셨던 일들을 또한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교회 속에 임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오고 있다’(I am coming)라고 번역되는 헬라어 엘코마이는 ‘시작된 주님의 오심’으로 이해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축복과 저주를 위해 계속적으로 오시는 것이며, 최후의 종말에 오시는 것으로서 마지막 축복과 저주를 위해 오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이 계시의 책의 증인으로서 자처합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8절). ‘보고 들은’ 것의 개념은 요한일서 1장 1~2절에서와 같이 합법적인 증인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을 만진 바라…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구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증거는 언약의 공동체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남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의 순종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8~10절에서의 주된 핵심은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거룩해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주님이 임하시는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것은 항상 임박한 사건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의 강림을 대망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강림은 우리 구원의 절정이요 우리가 완전히 그와 같아지는(요일 3:2; 고후 3:18; 빌 3:20, 21), 말하자면 만물이 새롭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21:5). 그래서 사랑하는 남편의 출현을 갈망하는 신부의 열렬한 반응은 ‘마라나타’인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번역된 이 말은 차라리 원어 그대로 두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성찬식과 예수 재림의 대망을 나타낼 때 사용하였던 단어였습니다. 성찬식과 예배 시에 주님의 임재하심을 소망하며, 또한 재림하셔서 이 땅의 고통과 슬픔과 악과 사단의 세력을 소멸하시기를 대망할 때 ‘마라나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배와 우리의 소망을 표현할 때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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