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롯과 동박박사 이야기
B.C. 39년경 이두매아의 족장으로 카이사르의 암살자들 카시우스와 브루투스가 로마제국 동방으로 피신하였을 때 그들 편에 섰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피살된 안티파르의 아들은 옥타비아누스 로마 황제에게 투항한다. 그는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에게 자신의 아버지 안티파르의 속죄를 청하면서 많은 선물을 제공한다. 이 사람이 바로 헤롯대왕(BC73-BC4)이다. 헤롯은 유대의 왕이 될 수 없는 갈릴리 북방 이두매 사람이었기에 유대적 연고를 갖기 위해 자신의 부인을 버리고 하스모니안 왕가의 미녀 미리암과 결혼한다. 헤롯은 옥타비아누스의 신임을 받기 위하여 지중해 연안에 해안도시 가이샤라를 세웠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곳곳에 요새를 세운다. 유대남부 베들레헴 근처에 헤로디온, 남부광야에 마사다를, 요단강 동편 계곡에는 요새 마케루스를 세운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던 세례요한은 바로 이 마케루스 요새에서 헤롯대왕의 아들인 안티파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BC4년경 헤롯왕에게 동방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마구스들 즉 박사들이었다. 페르시아 즉 오늘의 이란의 천문학자로 점성술사들인 이들은 페르시아 국정의 중대한 조언자들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 즈음에 큰 별을 발견하고 페르시아 에스파한을 출발한다. 그들이 2000km의 머나먼 길을 출발한 것은 큰 별이 나타난 것을 메시아 징조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5세기 알랙산드리아 문서 기록에 의하면 이들의 이름은 멜키오르, 발타자르와 카스파르였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아기예수를 경배하고 유대왕 헤롯을 피하여 고향 에스파한으로 돌아간다.
다윗의 왕통이 아닌 이방인으로 왕이 되었기에 항상 불안했던 헤롯은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 즉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모두 학살한다. 당시 주의 사자의 현몽으로 아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했지만 베들레헴 아기들의 희생의 빚을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그리고 이 아기 예수는 장성하여 그 유아들의 목숨에 대한 빚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바쳐 인류를 구속한다. BC 4년경 일생을 불안감과 소외감 집착증으로 시달리면서 살던 헤롯은 악인의 최후를 맞는다. 내장이 썩는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국은 세 아들이 나누어 갖는다. 남쪽 유대지방은 헤롯아켈라우스 북부 갈릴리와 뵈뢰아는 헤롯 안티파스 요단강 동편은 헤롯필립이 다스린다. 그리고 이 나라는 곧 종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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