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인간본성 이야기

미션(cmc) 2016. 12. 20. 21:01
 
 

인간본성 이야기 


교회의 변질 혹은 부패에 대하여 역사 신학자들은 4세기부터라고 말한다. 313년 콘스탄틴대제에 의하여 신교자유칙령이 발표되면서 기독교가 공인된 것을 교회의 변질, 국가권력과의 야합의 분기점으로 보기 때문에 어찌보면 개혁의 이념은 313년 이전의 복귀였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칼빈주의자 윌리엄 커닝햄은 그의 ‘역사신학’에서 이미 2세기에 성경적 교회관의 변질을 보여주는 3가지 조짐을 말하였다. 즉 고위성직자들의 출현, 은혜교리에 대한 잘못된 견해의 대두, 성만찬의 효과에 대한 과장된 개념의 대두가 그것이다.

사실 16세기 종교개혁은 루터가 아니었다 하여도 불가피했다는 것이 역사 신학자들의 공통적 견해이다. 그만큼 교회는 성경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었고 부패와 타락은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을 만큼의 상태였다. 예컨대 성직자들의 비윤리를 정당화하는 겸직제도(Pluralism)나 부재직임제(absenteeism) 성직자들의 취첩을 묵인해주는 세금제도(Concubinage fee)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제도의 개선이 모든 문제의 해결일 수 없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2월 13일에 일어난 사건만 해도 지도자 본성의 문제라는 데서 할 말을 잃는 것이다. 고장난 본성에서 나온 잘못된 지도자의 생각이 역사에 얼마나 큰 우를 범하였나를 보여주는 것이 교회사 아닌가! 이 점을 잘 해명하신 분이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라는 책으로 알려진 화란의 하우츠 바르트(B. Goudzwaard)이다. 그는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사회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만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다. 교회의 부패는 교회 지도자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의 부패였다. 16세기 성직자들의 부패에 대한 사실을 간단히 기록하면 1415-1517년 어간에 교황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말 콘스탄츠 교구의 경우 1500명의 사생아가 출산됐다.

스코틀란드의 성(姓) Matagart는 사제의 아들(Son of the priest)이란 뜻이고 Macnabb라는 성(姓)은 수도원장의 아들(Son of the abbot)이란 뜻에서 기원했다. 교회의 윤리적 부패는 반성직주의로 변하여 당시에 이러한 경구가 있었다.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즉 성직자들이 평신도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 시대 이야기인 듯싶어 씁쓸한 마음으로 단상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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