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20주 /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발걸음
(5월 20일 주일설교 / 롬10:1-4)
▣ 인도자 : 환영인사
1.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2. 가족 중에 중병이 걸려 치료하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식구의 마음과 발걸음은 어떨까요?
▣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해설찬송가 등을 참조하여 곡의 배경을 이해하고 부릅니다(참고:415장, 479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롬10:1-4
1.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누가 믿지 않는 사람인지 어떻게 구분할까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되 누가 독실하고 누가 형식적인지를 구분하는 시금석은 무엇일까요?
2. 바울의 마음은 민족의 구원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구원의 문으로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롬12:2,10:1,2,4,9,10, 눅6:6,7, 롬9:32,33).
3. 바울은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바울의 그룻된 열정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그리고 지난날 예수 믿기 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갈1:14, 빌3:6, 롬10:1,2).
4. 복음은 누군가 전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왜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롬10:1,11,12,13,14,17).
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 발걸음은 복음을 들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27일 주일은 태신자 작정일입니다. 이 한 주간을 어떤 마음, 어떤 발걸음으로 보내시겠습니까?(사40:9, 롬10:15).
▣ 지킴이 : 합심기도
1. 복음을 들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에게 찾아가는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2. 3천명 태신자 작정에 모든 직분자와 성도들이 참여하며, 전도할 뜨거운 마음이 우리 교회에 불꽃처럼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3. 계속되는 대심방과 6월 6일 선교대회와 이단 집단들의 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는데 미혹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4. 2007년도 교회 표어인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발걸음
(롬 10:1-4)
(롬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세상에서 과연 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누가 믿지 않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믿되 누가 독실한 신앙인이고 누가 형식적인 신앙인지를 구분하는 시금석은 과연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해 수고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문제보다 이웃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하며, 그 이웃에게 아름다운 소식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을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진실된 믿음의 사람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옥석을 가려야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의 그릇된 열심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 교회를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한 사람은 겉으로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할지라도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마음의 소원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기도 제목은 대부분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물론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소원을 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건강을 구하고, 재물을 구하고, 성공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평생을 그런 기도만 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그 은혜가 감사하여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마음의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인 사람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사도 바울은 일이삼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여러 지역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많이 세웠기 때문에 누구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오늘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더더욱 기뻐하시는 마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것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울이 자기들이 믿는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실에 대해서 배신자처럼 취급하고 죽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똑같이 미워하든가 아니면 침묵하든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히려 동족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입술에 발린 사랑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사랑하였음을 오늘 성경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롬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깝게 여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를 박해한다는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율법을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그 율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 죄이며, 또한 율법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율법 앞에서는 어느 사람도 의로워질 수 없음을 깨닫고 자기를 죄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를 찾아 그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의 행위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율법을 지키려고 나름대로 열심을 내었습니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행위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아시고 그 율법을 범한 죄를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인간이 범한 율법을 대신 다 지키고 인간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의 의를 이루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하셨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에서 구원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여신 것은 세상에 어떤 사람도 타락한 인간의 의지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핍박하고 비난하고 정죄하였습니다.
한 예를 들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책잡아 비난한 일들입니다.
(눅 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눅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완성하시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오히려 예수님이 걸림돌이 되고 부딪히는 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롬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보다 더 열심히 있고 철저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열심히 성경의 참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영적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열심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그러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또 다시 오래전에 지나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과거를 들추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바울 사도보다 더 열정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할 정도였고, 둘째 하라고 하면 누구보다 서러울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갈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열정에는 올바른 열정과 그릇된 열정 두 가지가 있으며 과거에 자기가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잘못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동족은 여전히 그와 같이 잘못된 열심에 빠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핍박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이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이 된 것입니다.
(롬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신앙으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나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지난 날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바울처럼 택하시고 부르셔서 예수를 믿게 하시고 지난날 온갖 죄악들을 사해주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게 하시고 언제 죽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오직 믿음으로 활짝 열어 놓아 주셨습니다.
그 확실한 증거가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믿고 현장에서 구원을 받은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자들과 현대판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믿음외에 또 다른 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그릇된 열심과 똑같이 잘못된 열심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참된 열심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겠다는 그릇된 열심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대신 이방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 일에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이방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우상과 그릇된 철학과 미신을 버리고 예수께서 돌아와 예수님을 믿고 회개와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일이삼차 선교 여정입니다. 바울은 이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오래 동안 기도를 해 왔고, 길이 막혔으나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 나중에는 죄수의 몸이 되어서라도 로마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롬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한다고 해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처럼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방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믿어 구원받는 것이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롬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여기서 바울이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는 동사는 현재 진행형임을 볼 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열망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구원을 얻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릴 때 과연 무슨 기도를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해야 할 것인가를 잘 나타나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거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죄를 범하며 살았을 지라도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 말씀에 보증을 하셨습니다.
(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복음은 마치 영양가 높은 음식과 같아서 누구든지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는 것처럼 복음도 누구든지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은 반드시 누군가 요리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요리를 반드시 입으로 먹고 소화를 해야만 되는 것처럼 복음도 누군가 전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듣고 거절하지 말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믿겠노라고 시인을 해야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지 이천 여년의 세월이 흘러 복음이 오늘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일까요? 그 원인은 딱 한 가지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처럼 복음은 전해주는 사람과 전해 준 것을 듣고 믿어야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복음을 전해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고, 복음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이미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주일마다 한 곳에 모이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배만을 드리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1) 처음 교회를 나온 새 가족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고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믿음을 성숙하게 만드는 영적인 병원이요 학교인 것입니다.
2)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도를 훈련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 지구 끝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하는 영적 훈련소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한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을 구원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바울처럼 중보 기도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복음을 가리켜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복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조상 대대로 미신과 우상과 조상 숭배와 축첩과 가난과 질병으로 영육 간에 피폐했던 민족이었습니다.
누가 그러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나요? 누가 그러한 우리 민족을 위해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웠나요? 어떻게 세계열강 속에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나요?
그것은 불과 122년 전에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온 아름다운 전도자의 발걸음과 이 민족이 복음화 되기를 안타깝게 기도하던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축복의 기도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메마르고 가난한 땅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무리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혼란하고 어지러운 땅
보이는 것은 이기적인 많은 분쟁들뿐
꿈도 희망도 없이 헤매는 사람들
아주 오래전
선교사의 애타는 기도가
지금 이순간도 너무 필요한데
목숨을 바쳐 죽기까지 부르짖은 간절함
오직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 행하시고
우리 영의 눈이 주의 일들 보길 원하네
지금은 비록 어지러운 세상일 지라도
머지 않아 이 땅이 은총의 땅 되리라는 걸 믿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열두 제자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모두가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족 중에, 이웃 중에, 민족과 세계 중에 아직도 예수가 누군인지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중병에 걸려 이미 치료의 기회를 놓친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많은 돈을 들여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하는 이유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비록 낫지 않아도 원없이 치료라도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전도지를 받지 않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며, 그들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일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비하여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답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고쳐주기 위하여 이역만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아름답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발걸음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발걸음이라고 신구약 성경이 동일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구원받지 못한 이웃을 전도하기 위해 태신자로 품고 기도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마음이라면, 세상에서 아름다운 발걸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찾아가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사랑을 들고 달려가는 발걸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주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에게 찾아가는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발걸음이 있는 참된 믿음의 성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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