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낙심하지 않는다, 고후 4:7-11
영감의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을 질그릇으로 비유했습니다. 이는 우리 인생의 불완전성을 지적해 주는 말입니다. 인생은 질그릇같이 볼품도 없고 견고하지도 못하고 잘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실존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단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 실존이요 질병에 시달리고 환란 시험 가난 실패 공포로 쉽게 낙망하고 좌절하는 존재입니다. 유명한 철인 파스칼은 『인간은 갈대다. 한방울의 물, 한점의 바람에도 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루살이에도 눌려 죽을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졌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보배란 소극적으로는 바울이 받은 사도의 직분을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목사 장로 권사 성가대 교사가 보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주셨을까요? 질그릇의 연약성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아무리 연약해도 깨지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질그릇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환난이 무엇이며 이를 극복토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합니다. 다른 번역의 성경은 이를 『우리가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우리는 모든 일에 괴로움을 당해도 꺽이지 않으며』라고 표현합니다. 최근에 지속되는 경제난과 장래에 대한 두려움 등을 비롯, 살다보면 우리는 동서남북 다 막히고 사면초가인 고난의 때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희망의 그림자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난감한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싸이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가 철저히 곤고한 일과 사단의 세력에 둘러 막히게 되도 저 위는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않습니다. 답답한 일이란 쩔쩔매다, 난처하여 어쩔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낙심이란 뜻은 히브리어로 마사스, 즉 용해하여 녹아 내리게 하다, 헬라어로는 카코스, 무가치하고 해롭다는 말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은 조급한데 점점 더 일이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을 때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유명한 골프선수 박세리는 메이저 리그 때 18번 홀에서 공이 호수로 빠지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신발을 벗고 양발도 던지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이처럼 극적으로 러프를 탈출한 뒤 연이은 그림같은 스윙으로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10%가 아니라 100%의 승리를 보장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낙심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낙심은 우리의 희망 꿈 소망 기쁨을 박살내는 백해 무익한 것입니다.
셋째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궁지에 몰려도 빠져나갈 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에 나간다고 신앙을 지킨다고 주님을 높인다는 이유로 당하는 온갖 고통 비방 멸시 천대 업신여김 불리한 대우 인권유린 등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누리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며느리보고 사위보고, 이런 것 가지고 기뻐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바닷가에서 조개껍질 주어들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조개 껍데기가 아니라 진주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예수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오고 머리 깍아버리면 수건 덮어쓰고 나와요. 저 유명한 그리스도인 잔다크는 그의 사랑하는 동역자들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만이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나에 대한 우정,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으신다. 그의 은총의 날개 안에서 나는 죽기까지 용감하고 용감하리라.』고 외쳤습니다.
넷째 거꾸러 드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함이다 하셨습니다. 거꾸러 뜨림이란 때려 눕힘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아 쓰러져도 결코 그리스도인은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일어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4장에서 루스드라에서 복음 전도 중 유대인들에게 돌을 맞아 머리가 깨지고 거꾸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그 섬에 다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더베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참으로 이상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데 있습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의 기상은 넘어질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있습니다. 브라우닝은 그의 에필로그에서 『용감한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주님과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지 않고 가슴을 펴고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캄캄한 구름이 걷칠 것을 의심치 않으며 자기가 신봉하는 정의가 곤경에 처해도 악이 승리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넘어지면 일어서고 패하여도 다시 잘 싸우고 깨어나기 위해 잠드는 사람입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온갖 우겨쌈과 답답함과 핍박과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3, 14절에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즉 부활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믿고 부활을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을 어떤 난관에서도 일으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빚으시고 장중에 보호해 주시는 질그릇이요,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보배를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비록 IMF의 때를 살아간다 하더라도 성도여 낙심하지 맙시다. 환난은 잠깐이나 그 영광은 영원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높이 드러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