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13장 31절-33절, 생명력있는 교회
최종원 목사(광주반석교회)
교회는 「살아있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생명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변화가 있으며 움직임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들풀을 사람들이 밟고 다니고 차가 다니는 딱딱한 곳을 비집고 나오는 것을 보면 생명이 있다는 것이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교회가 살아있다면 어떠한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그렇지 못합니다. 많은 곳에서 환경을 탓하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생명력이 무엇이며 생명력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를 오늘날 우리의 교회를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생명력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1장 4절에서는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여주신 5장 35절에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또 예수님의 명령으로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 나왔을 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께서 죽기 전날 밤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은 풍성하며 영원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생명력 있는 교회라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한 교회를 말합니다. 생명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는 능력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성령이 임하시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외치기 시작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교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로 인하여 세상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두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밭에 심긴 겨자씨 같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씨중에 가장 작은 씨인데 이것을 심었는데 그 작은 것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력이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예수님 제자들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학력도 없고 부자도 아니고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저것들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싶었을 것입니다. 또 그 사람들 주위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입니까? 세상에서 배가 고파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리고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나서부터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에 사랑할 것이 없는 나약한 자들이 모여서 예수를 전하는데 생명력이 있으므로 교회는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땅에도 예수 믿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연약한 자들이 모여 큰 나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밀가루를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십니다.
적은 누룩이 많은 밀가루를 전부 부풀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누룩의 생명력을 말씀하십니다. 누룩의 생명력은 말이 없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데 전혀 소리가 없습니다. 누룩은 아무 소리 없이 많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는 소리없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말없이 소리 없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남을 죽일지라도 자기가 높아져야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도 죽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자기가 예수 안에 변화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3자 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너는 돌아서라』고 합니다. 모양만 갖추고 생명이 없는 자들과는 같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교회 안에 있을 때에 누구도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능력이 누룩의 생명력입니다.
또한 누룩의 생명력은 지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모든 말가루를 다 부풀리기까지 쉬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교회입니까? 생명력 있는 교회는 세상을 정복합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는 지치지 않습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교회요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환경의 어려움입니까? 경제가 어렵습니까? 우리에게 문제는 예수의 생명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바울은 환경을 탓하며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감옥에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도망가서 나쁜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오네시모는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었으며 전에는 많은 사람에게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 많은 사람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소유한 교회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무엇이 문제입니까? 환경의 어려움입니까? 돈이 부족합니까?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이 없음이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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