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네 이름값을 했느냐

미션(cmc) 2009. 1. 26. 20:50

'지상설교' 요나 1:1-2 네 이름값을 했느냐

최해권 목사'군산청운교회'

 

요나!


이름이 「비둘기」란 뜻을 가진 이 사람을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나는 기원전 8세기경에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사명은 기원전 7세기경의 나훔 선지자 시대에 죄악상을 연출했던, 앗수르의 니느웨성에 가서 그들을 쳐서 40일 후에 멸망할 것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명을 버리고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요나에게 『너는 너의 이름 값대로 사명을 다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름의 뜻은 「비둘기」란 순전한 의미인데 그 이름 값을 하고 있느냐고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요나는 그 이름대로라면 순종에 순한 자 같이 사명을 다해야 했고, 사역에 순한 양같이 주인의 명령에 최후를 다해야 했고, 죽음에도 죽음으로 충성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배 밑창에 들어가 세상 몰라라 하면서 잠을 잤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과연 선지자로서의 참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을 쳐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원문 「우카라 알레하」는 남성 단수형입니다. 성을 치라는 말은 죄많은 성을 치라는 말이지 이유없이, 죄악이 없는데도 치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죄악으로 형벌을 받아야 할 성, 멸망할 이유가 있는 성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의 일생 중 이유 없이, 까닭없이 당하는 고난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욥의 고난 역시 까닭이 있었습니다. 요나와 우리에게 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된 주권이며, 시험에 대해 인간에게 올바른 판단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치라고 명하신 것은 그 땅, 그 성,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는 반드시 목적과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난국 역시 이 백성이 범죄하고 허랑방탕 방종하고, 믿음의 성도들이 영적인 태만과 자만을 했기 때문에 주시는 경종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받은 요나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이름대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요나는 명령을 어기고 욥바로 내려갔고, 바다밑까지 내려갔고, 고기 뱃속까지 내려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는 대풍을 만났습니다. 그 바다는 원래 고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고간 뱃자리 바로 그곳엔 큰 바람이 일고 있었습니다. 평안을 추구했지만 요나의 생각과 달리 재난이 그에게 닥친 것입니다.


요나는 사명을 잊고 엉뚱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다시스라는 곳이 요나의 꿈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대풍을 만나 꿈이 산산조각난 것입니다. 요나는 이름 값, 사명의 값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연고로 대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명을 받았고 좋은 이름을 가졌지만 요나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순간 부터, 삶의 위치가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름값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나란 이름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통해서 천국가는 것입니다. 도덕으로 명예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깊이 깨닫고 가슴을 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요나를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내려갈 때 성도의 모든 가치는 떨어집니다. 신앙이 내려갈 때 권위를 잃고 마귀에게 굴복당하게 됩니다. 다른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 든든한 것 같아도 신앙이 떨어지면 성도는 평화와 기쁨을 다 상실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요나는 비로소 자기 가슴을 쳤습니다. 밑바닥에서 살수 있는 길, 그것은 가슴을 치는 일입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어려움에 처한 분이 계시다면 가슴을 치는 일만이 살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명을 잃게 되면 불신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의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불신자 선장의 책망이 사명을 잃어버린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됐습니다. 1:6절에 선장은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불신자인 선장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입니다. 때로는 탐욕과 안일함으로 사명을 잃어버린 발람을 위해 나귀까지도 기꺼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위해서는 닭의 울음 소리를 통하여 회개하도록 하신 주님이었습니다. 마른 나무 지팡이를 통하여도 홍해를 가르며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큰 책망의 교훈을 받음이 그 이름값 제대로 하는 사명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는 곧 자신의 죄악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져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자기의 신분을 『나는 히브리 사람』이라고 소개했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던져졌지만 다시 쓰임받는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악을 깨닫고 죽음의 각오로 마음을 새롭게 했을 때 하나님은 요나를 다시 들어 쓰셨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는 바울의 고백처럼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충실한 종이 됩시다.


『네 이름값을 했느냐?』 1999년 한해 직분을 받은 모든 분들과 주의 사명자들이여! 올 한해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열매를 맺을 것입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나의 지금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다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