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
잠수함 속의 승무원들 (눅 24:13-35)
죽음 뛰어넘은 궁극적인 소망 희망이 죽어가는 세상에 예수 부활은 산소와 같은 새로운 힘 2차 대전 때 한 잠수함이 다른 배에 부딪쳐서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앞 바다에 침몰되었습니다. 많은 배들이 잠수함 승무원들을 구출하려고 달려갔습니다. 아무도 침몰한 잠수함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는 것은 잠수함 속의 산소가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수함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잠수부가 헬멧을 쓴 채 귀를 잠수함에다 대고 들어보았습니다. 잘 들어보니 망치소리인데 딴, 따안 하고 치면서 모르스 부호로 된 신호가 들렸습니다. 잘 풀어보니 그 말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하는 소리였습니다. 잠수함 속의 승무원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신들이 살아나갈 수 있다는 소망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소망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게를 하나 차리겠습니다." "이번 문제만 해결되면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 자식들이 잘되기만 한다면를 바라고 지금 나는 고생해도 괜찮습니다." 이런 말들이 전부 소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표현된 것입니다. 세상적 소망의 가장 마지막은 자식에 대한 바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라도 자식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실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망은 절대로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벽을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생은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인데 결국 그들에게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얼마나 아이러니칼 한 일입니까? 살려고 애쓰는데 죽음으로 갑니다. 1. 소망이 없는 삶
여기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제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그 동안의 모든 고통속에서 다시 새롭게 되어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구세주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그를 따라다녔고 그가 기적을 베푸는 것을 보았고, 권위로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소망은 오히려 절망이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소망 없는 삶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을 보세요. 그들에게는 삶의 소망이 없습니다.
믿지 말아야 할 것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되면 나중의 결과는 훨씬 더 큰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는 사실입니다. 옛 소련이 무너지기 전 냉전시대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소련 스파이가 한 명 잡히니까 마침 소련에 와있던 미국 운동선수를 스파이로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양자간에 스파이 교환을 위해서 그 사람을 잡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람이 스파이라는 자백을 받아내야 했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조사가 끝나고 당신은 이제 돌아가게 되었소" 하는 말과 함께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했습니다. 자기 옷도 받아서 입었습니다. 이제 자기를 마중 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을 갑자기 다시 지하감방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그 사람의 모든 결심과 소망은 깨져버렸습니다. 결국 자기가 스파이임을 할 수 없이 고백하고 시베리아 수용소로 떠나게 됩니다.
잘못된 것에 소망을 두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절망이 더욱 심한 것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들도 이러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따랐지만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깨졌습니다. 2. 소망이 있는 삶
이때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풀어서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설명해주십니다(26-27절). 그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잃어버렸던 새로운 소망으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넘어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니까 삶에서 새로운 힘과 에너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미래의 소망으로 이끕니다. 미래의 소망은 현재의 우리를 살립니다. 죽음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부활함으로써 우리의 첫 열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 나머지도 첫 열매와 같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첫 열매와 나머지는 뗄 수 없는 유기적 일체(Organic unity)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합니다(고전 15:20). 그러므로 예수님께 속한 우리도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그토록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고전 15:19).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우리에게 죽음을 뛰어넘는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잠수함 밖에서 잠수부가 "당신들을 구할 소망이 없소" 라고 모르스 신호를 보냈다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조금만 기다리시오. 우리가 당신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잠수함 속과 같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없어져 갈 세상에서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들이 섞여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공간적으로는 같은 지구에서 살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사는 소망을 갖고 있지만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행복과 불행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가, 어느 자리를 차지했는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어떠한 환란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는 부활의 소망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결국은 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설교노트 우리는 지금 현재에만 매여 있기 쉬운 생활습관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소유 문제로 현재의 행복과 불행이 갈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산소가 없어져가는 잠수함으로 유추해서 이해할 수가 있고 이때 그 속에서 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인식하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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